국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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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는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 국채를 꼽을 것입니다.

국채는 정부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빚 문서이자, 투자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금융 상품의 대명사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부의 차용증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 경제의 혈액순환을 조절하고, 모든 금리의 기준점이 되며, 위기 시에는 우리 자산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주는 금융 시스템의 가장 깊은 초석입니다.

1. 국채란 정확히 무엇인가?

국채는 정부가 국민이나 기관을 상대로 돈을 빌리면서, 언제까지 얼마의 이자를 주고 원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증서입니다.

국가가 발행하는 차용증

정부는 국방, 사회간접자본(도로, 항만 등) 건설, 복지 정책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합니다.
때로는 세금만으로는 이 모든 돈을 충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여 시장으로부터 부족한 자금을 빌려옵니다.

즉, 우리가 국채를 산다는 것은 곧 국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입니다.
개인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듯이, 국채는 우리가 국가로부터 받는 가장 확실한 차용증인 셈입니다.

투자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자산

국채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 채무자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파산하여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신용 위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정부는 최악의 경우 세금을 더 걷거나, 심지어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서라도 빚을 갚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신용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국채는 사실상 원금을 잃을 위험이 거의 없는 ‘무위험 자산’으로 취급됩니다.

2. 국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국채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용어와, 금리와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약속의 세 가지 요소

모든 국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 액면가: 만기가 되었을 때 정부가 투자자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한 원금입니다.
  • 표면금리: 정부가 돈을 빌린 대가로 투자자에게 매년 지급하기로 약속한 이자율입니다.
  • 만기: 정부가 원금을 갚기로 약속한 날짜입니다.

예를 들어, 액면가 1만 원, 표면금리 3%, 만기 10년짜리 국채를 샀다면, 당신은 10년 동안 매년 300원의 이자를 받고, 10년 뒤에 원금 1만 원을 돌려받게 됩니다.

시장에서의 가격 변동

국채는 만기까지 보유할 수도 있지만, 주식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도 있습니다.
이때 국채의 시장 가격은 ‘시중 금리’와 매우 밀접하게, 그리고 반대로 움직입니다.

이 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연 3% 이자를 주는 국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새로 발행되는 국채나 은행 예금 금리가 연 5%가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당신이 가진 3%짜리 국채를 제값 주고 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자신의 3%짜리 국채를 팔기 위해 가격을 깎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시중 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된 국채의 시장 가격은 하락합니다. 반대로 시중 금리가 내리면 국채의 가격은 상승합니다.

3. 왜 국채는 중요한가?

국채는 단순히 안전한 투자 상품을 넘어, 현대 금융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모든 금리의 기준점

우리가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의 금리나, 삼성전자와 같은 우량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의 금리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바로 가장 안전한 국채 금리에, 각 주체의 신용 위험에 따른 ‘가산금리’를 더해서 결정됩니다.

즉, 국채 금리는 한 나라의 모든 대출과 채권 금리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자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우리 삶의 모든 금리가 따라 오르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앙은행이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하고 금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도구가 바로 국채입니다.
이를 ‘공개시장조작’이라고 합니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고 판단되면, 중앙은행은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팝니다.
그러면 시중의 돈이 중앙은행으로 흡수됩니다.
반대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어야 할 때는, 시장에 있는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돈을 공급합니다.

이처럼 국채는 중앙은행이 경제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가장 강력하고 정밀한 무기입니다.

위기 시의 최종 피난처

글로벌 금융위기나 팬데믹과 같은 극심한 위기가 닥치면, 투자자들은 위험한 주식 시장을 떠나 가장 안전한 자산을 찾아 몰려듭니다.
이때 그들이 찾는 최종 피난처가 바로 국채입니다.
이를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모두가 국채를 사려고 몰려들기 때문에, 위기의 시기에는 역설적으로 국채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국채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우리 자산이 침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구명보트 역할을 합니다.

4. 국채 투자의 위험은 없는가?

국채는 매우 안전한 자산이지만, ‘위험이 전혀 없는’ 무결점의 자산은 결코 아닙니다.

금리 변동의 위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시중 금리가 오르면 기존 국채의 시장 가격은 하락합니다.
만약 당신이 국채를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약속된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기가 되기 전에 급하게 돈이 필요하여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금리 인상기에는 원금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채 투자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위험인 ‘금리 변동 위험’입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조용한 도둑

국채 투자의 또 다른 복병은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만약 당신이 연 2% 이자를 주는 10년 만기 국채에 투자했는데, 향후 10년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3%를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매년 2%의 이자를 꼬박꼬박 받았지만, 돈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오히려 매년 1%씩 줄어든 셈입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국채의 수익률을 조용히 갉아먹는 가장 무서운 도둑입니다.
특히 만기가 긴 장기 국채일수록 이 인플레이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됩니다.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국가가 망하면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선진국이 채무 불이행, 즉 부도를 선언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나 그리스처럼 국가 부도를 겪은 사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경우, 국채는 약속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채의 신용 위험은 0에 가깝지만, 결코 0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5. 금융 시스템의 초석

국채는 단순히 개인의 투자 대상을 넘어, 현대 금융 시스템 그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춧돌입니다.
정부에게는 국가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자금 조달 창구이고,
중앙은행에게는 경제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며,
모든 금융기관에게는 모든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점이자 가장 확실한 담보물입니다.

국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현대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차용증서가 어떻게 우리 경제의 심장부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복잡한 금융의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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