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없는 이유 (대한민국 베네수엘라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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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결론] – 번영한 산유국이 최빈국으로 전락하기까지 : 국가가 망하는 과정사고실험: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최근 일부 언론과 온라인 채널에서 베네수엘라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경고성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정 정책이나 사회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이제 한국은 베네수엘라처럼 됩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도 있지만
종종 두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간과한 채
현상의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국가의 복잡한 실패사를 단 한 문장의 구호로 단순화시켜 공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적 질문이 제기되는 지점입니다.

본 분석은 이러한 단순 비교를 넘어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구조적 차이를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심층적으로 해부하여
왜 이 비교가 성립하기 어려운지를 명확히 증명하고자 합니다.

정치적 신념을 떠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입니다.

1부: 국가의 운영체제(OS) – 출발점부터 다른 소스 코드

한 국가의 장기적 운명은 표면적인 정책 이전에
그 사회의 게임 규칙을 정의하는 근본적인 운영체제
즉 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지점에서 두 국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분석틀 중 하나입니다.

포용적 제도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는 게임의 규칙을 의미합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사유 재산권 보호(내가 번 것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
공정한 법 집행(힘 있는 자와 없는 자에게 같은 법을 적용)
그리고 교육과 인프라 같은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제공이 있습니다.

이러한 포용적 제도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투자하고 혁신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도록 장려합니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파이가 커지고
그 과실이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착취적 제도란 무엇인가?

반대로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나머지 국민들로부터
부를 빼앗고 착취하기 위해 설계된 게임의 규칙입니다.

이 시스템에서 사유 재산권은 소수에게만 보장되고
법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적용됩니다.

이러한 착취적 제도는 단기적으로는 소수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동기를 파괴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며
결국 국가 전체를 공멸의 길로 이끕니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고통스러웠지만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나간 과정이었던 반면,
베네수엘라의 실패는 달콤했지만 착취적 제도가 스스로를 파괴해나간 과정이었습니다.

1. 자원 없는 축복의 포용적 성장 vs 자원 있는 저주의 착취적 분배

대한민국 (포용적 제도의 씨앗):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가진 것이 인적 자원 외에 전무했습니다.
이 자원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국가가 생존을 위해
포용적 경제 제도의 기반을 닦도록 강제했습니다.

생존 전략은 명확했습니다.
국민을 교육시켜 인적 자본을 만들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해외 시장에서 경쟁시켜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유 재산권이 점진적으로 보장되고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냉혹한 규칙을 따라야 했으며
정부는 수출 증대라는 목표 아래 교육과 인프라에 전략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착취적 제도의 고착):
반면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이라는 축복을 저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현상의 전형입니다.

석유 수입은 소수의 엘리트층이 부를 독점하고
그 부를 대중에게 시혜적으로 분배하여 정치적 지지를 얻는
착취적 경제 제도를 강화했습니다.

혁신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활동보다
이미 존재하는 석유 수입을 분배받기 위한 정치적 로비
즉 지대 추구(Rent-seeking) 활동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2. 주인으로서의 납세자 vs 고객으로서의 수혜자

대한민국 (주인과 대리인의 계약):
물론 많은 국민들이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인다”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 재정의 근간은
국민과 기업이 납부하는 세금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 하나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긴장감 넘치는 계약 관계를 형성합니다.

정부는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이 필요하고
이 필요성 때문에 정부는 대리인이 되고 국민은 주인이 될 수 있는
권력 관계가 성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성 있는 정부를 만드는 포용적 정치 제도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베네수엘라 (베푸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영 석유 기업의 수입 덕분에
국민에게 세금을 걷을 필요가 거의 없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국가를 지대 국가(Rentier State)라고 정의합니다.

이 구조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주인과 대리인이 아닌
베푸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로 변질시켰습니다.
국민은 국가 운영의 주권자가 아닌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과 혜택을 받는 수동적인 고객이 되었습니다.

정치는 책임 있는 국정 운영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석유 달러를 선심 쓰듯 나누어주는가를 다투는
포퓰리즘의 장으로 전락했습니다.

2부: 경제의 하드웨어 – 복합엔진 항공모함 vs 단일엔진 경비행기

두 국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의 물리적, 재무적 구조
즉 하드웨어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1. 경제 엔진의 복잡성: 세계 최상위권 vs 최하위권

한 국가의 경제 구조를 항공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항공기는 여러 개의 강력한 제트 엔진을 장착하여
엔진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엔진의 힘으로 안정적인 비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항공기는 단 하나의 프로펠러 엔진에 모든 것을 의존하여
그 엔진이 멈추는 순간 추락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경제 복잡성 지수(ECI, Economic Complexity Index)
이러한 차이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지수는 한 국가가 얼마나 다양하고 정교하며 희소한 제품들을
생산하여 수출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대한민국 (고도로 다각화된 복합 엔진):
대한민국은 수십 년간 이 지수 순위에서 항상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만들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집약된 제품을
그것도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국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다양성의 힘: 한국은 반도체, 스마트폰부터 자동차, 선박, 철강, 석유화학, 그리고 K-팝,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수출 엔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정 산업의 경기가 악화되더라도 다른 산업이 버팀목이 되어주며 국가 경제 전체의 급격한 붕괴를 막는 포트폴리오 효과를 누립니다.
  • 정교함의 힘: 한국의 수출 품목들은 고도로 정교한 기술과 지식의 집약체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개의 연관 산업과 지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의 네트워크는 한번 구축되면 다른 국가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이 됩니다.

베네수엘라 (치명적으로 취약한 단일 엔진):
반면 베네수엘라의 경제 복잡성 지수는
다른 자원 부국들과 함께 항상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오직 석유라는 단 하나의
기술적으로 단순한 원자재 생산에만 모든 것을 의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다양성의 부재: 베네수엘라 수출의 90% 이상은 항상 원유와 그 파생 상품이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운명이 예측 불가능한 국제 유가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 달려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유가가 폭락하자 국가 경제는 그 충격을 흡수할 아무런 완충 장치 없이 그대로 추락했습니다.
  • 정교함의 부재: 석유를 퍼올려 파는 것은 반도체를 설계하고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단순한 기술을 요구합니다. 석유 시추 기술은 다른 산업으로 거의 확장되지 않는 고립된 기술입니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다른 산업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지식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2. 투자의 질: 씨앗 뿌리기 vs 씨앗 먹어치우기

정부의 재정 지출은 그 질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어떤 지출은 미래의 성장을 위한 씨앗이 되지만
어떤 지출은 당장의 만족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생산적 투자):
대한민국 발전 국가 모델의 핵심은
한정된 재원을 미래의 생산 능력 확충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배분한 것입니다.

1970년대 건설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당장의 소비 만족이 아닌 미래에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생산적 투자였습니다.
또한 정부는 은행을 통해 국민들의 저축을 수출 기업에 대한 저금리 대출로 공급하며
한정된 자본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유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 (현재를 위한 소비성 탕진):
반면 베네수엘라는 넘쳐나는 석유 달러를
당장의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한 소비성 지출에 탕진했습니다.
석유 수출로 인한 통화가치 상승은
다른 모든 제조업을 고사시키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유발했습니다.

정부는 물보다 싼 휘발유 보조금 등에 돈을 쏟아부었고
정작 국가의 혈관인 도로와 발전소 같은 핵심 인프라는 방치되어 붕괴했습니다.
미래의 씨앗까지 먹어치운 셈입니다.

3부: 운영체제의 소프트웨어 – 게임의 규칙이 다르다

하드웨어의 차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규칙과 인센티브 구조
즉 소프트웨어의 차이입니다.

1. 기업의 역할 (글로벌 경쟁자 vs 정부 계약자)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글로벌 경쟁):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경유착과 같은 비판을 받지만
베네수엘라의 기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대가로
수출 실적이라는 혹독한 성과 평가를 받아야 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많은 달러를 벌어왔는가가 기업 평가의 기준이었고
이는 기업들이 세계 시장이라는 거친 정글로 나가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과 생존을 걸고 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 생산성, 품질 관리 능력 등
현대 기업의 핵심 역량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생존을 위한 정치 로비):
반면 베네수엘라의 민간 부문은 글로벌 경쟁에 노출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된 사업 모델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료와의 인맥을 통해 독점적 이권을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관세 장벽 속에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R&D 부서가 아니라 정부 관료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습니다.
모든 기업 활동이 지대 추구로 변질되면서
기업 생태계는 혁신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허약해졌습니다.

2. 인적 자본의 쓰임새 (산업 인력 vs 좌초된 인재)

대한민국 (산업 발전과 결합된 인적 자본):
한국 역시 교육열을 바탕으로 수많은 대졸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삼성, 현대, LG, 포스코와 같은
빠르게 성장하는 생산적인 산업 부문에 의해 성공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곧바로 산업 현장에서 실제 부가가치로 전환될 수 있었습니다.
교육 시스템(소프트웨어)과 산업 기반(하드웨어)이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베네수엘라 (산업과 분리된 인적 자본):
반면 베네수엘라는 고학력 인재들을 대량으로 길러냈지만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생산적인 기업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최고의 두뇌들은 졸업과 동시에 갈 곳을 잃었습니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교육 투자는 최고의 CPU(인재)를 수없이 만들어 놓고
정작 그 CPU를 꽂을 메인보드(기업과 산업)를 만들지 않은 셈이 되었습니다.
교육 투자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회 박탈로 인한 사회적 불만만 키우는 좌초된 자산(Stranded Asset)이 되어버렸습니다.

결론: 진짜 위험에 대한 진단과 우리를 위한 교훈

지금까지의 구조적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 특정 정책 때문에 베네수엘라처럼 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비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국가는 경제 구조의 복잡성, 제도의 성격, 국가와 시민의 관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운영체제를 가진 근본적으로 다른 실체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히 존재하며
진짜 위험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 파괴적 포퓰리즘의 위험: 베네수엘라의 진짜 교훈은 특정 경제 정책이 아니라, 바로 파괴적 포퓰리즘의 부상입니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와 불평등 심화가 대중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기존 제도를 파괴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입니다.
  • 제도적 자만심에 대한 경고: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한때 성공적이었던 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와 같은 우리의 포용적 제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키고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 재정 건전성의 보편적 원칙: 베네수엘라처럼 파산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시적 호황에 기대어 미래 세대가 감당할 영구적 지출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고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입니다.

궁극적으로 진짜 질문은 “우리가 베네수엘라가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 질문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소모적인 논쟁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총체적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워, 우리의 포용적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우리 앞에 놓인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며, 더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길을 걸어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주어진 진정한 과제입니다.

이 글을 읽어도 아직 “대한민국이랑 베네수엘라랑 그 차이점이 뭔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래 시리즈 글의 1편부터 읽어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한 달동안 자료조사하며 한때 GDP 4위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어떻게 최빈국으로 몰락했는지
여러편에 걸쳐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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