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A는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의 약자입니다.
1919년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의해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 및 미디어 기업이죠.
설립 초기 RCA는 무선 통신 기술,
특히 라디오의 상업화를 주도하며 미국 산업계의 총아로 떠올랐습니다.
주요 사업 영역은 라디오 수신기 제조 및 판매였으며, 나아가 미국 최초의 전국 단위 라디오 방송망인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를 설립하여 방송 산업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이후 텔레비전, 축음기(RCA Victor 브랜드), 녹음 기술, 진공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20세기 내내 미국인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
기술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이었습니다.
‘미래가치 할인법’의 역사적 증명, RCA
RCA는 ‘미래가치 할인법’이라는 투자 논리가 어떻게 비이성적인 시장 과열과
거대한 버블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사례로 등장합니다.
1920년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경제적 풍요와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론이 지배하던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오늘날의 인터넷이나 인공지능(AI)과 같이
시대를 바꿀 혁신 기술로 여겨졌고, 그 중심에 RCA가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은 RCA의 현재 재무 상태나 실제 수익보다, 라디오 기술이 미래에 가져올 무한한 성장 가능성에 열광했습니다.
이는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게 된 배경입니다.
투자자들은 RCA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상상력을 동원해 잠재적 수익을 극단적으로 부풀렸고,
이를 근거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가를 정당화했습니다.
비이성적 과열과 버블 붕괴의 과정
RCA 주식은 1920년대 투기 광풍의 대명사였습니다.
주가의 폭등
1920년대 동안 RCA 주가는 무려 200배나 상승했으며,
특히 1928년에는 단 몇 달 만에 주가가 5배 이상 폭등하는 기현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기업의 실제 이익 성장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비현실적인 가치 평가
1929년 주가 정점에서 RCA의 주가수익비율(P/E)은 72배에 달했습니다.
이는 당시 투자자들이 RCA가 1달러를 버는 것에 대해
72달러를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는 의미로,
실제 벌어들이는 이익의 수백 배에 달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이 가격은 기업의 내재 가치가 아닌 오직 미래 성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버블의 붕괴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대공황과 함께 산산조각 났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었던 RCA의 주가는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1929년 9월 주당 114달러를 넘었던 주가는
1932년에는 2.5달러까지 폭락하며 고점 대비 98%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RCA가 남긴 상징적 의미
결론적으로 RCA는 ‘위험한 논리’의 살아있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기술주 버블의 원형
신기술에 대한 대중의 집단적 환상이 기업의 실체와 얼마나 괴리될 수 있으며,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금융 버블을 낳는지 보여주는 최초의 대규모 사례입니다.
기대와 현실의 극단적 괴리
투자자들이 기업의 재무제표와 현실적인 가치 분석을 외면하고, ‘미래’라는 막연한 키워드에만 매몰될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상징합니다.
탐욕을 비추는 ‘요술 거울’
당시 RCA의 주가는 기업의 현재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투영하는 요술 거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이 깨졌을 때,
남은 것은 투자자들의 끝없는 탐욕이 만들어낸 폐허뿐이었습니다.
따라서 RCA는 한 시대의 위대한 혁신 기업임과 동시에,
비이성적 탐욕이 만들어낸 주식 시장 버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고전적인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