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온 세상이 들썩였던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던 파란만장한
인플레이션 역사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려 해요.
특히 정신줄 놓게 만드는 초인플레이션의 광풍부터
한순간에 모든 것을 거품처럼 사라지게 만드는
자산버블의 아찔함까지 돈 때문에 울고 웃었던
인류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여드릴게요.
혹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단순히
“에이 물가 좀 오르는 거?” 하고
가볍게 생각하시나요?
이 녀석 알고 보면 역사책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때로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어마어마한 존재랍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돈벼락과 쪽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던 인플레이션 역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보시죠.
태초의 돈 그 가치의 수난사
인류가 처음 ‘돈’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플레이션 역사의 씨앗은 이미 뿌려지고 있었어요.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조개껍데기 짐승의 가죽 그리고 반짝이는
금속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녔지만 문제는 항상
‘얼마나 많이 있느냐’였죠.
금화 한 닢의 배신 로마 제국의 교훈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로마 제국도
이 돈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답니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고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황제들은 교활한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바로 동전에 구리 같은 값싼 금속을 몰래 섞어
금이나 은의 함량을 줄이는 것이었죠.
당연히 시중에 돌아다니는 동전의 양은 늘어났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가치는 형편없이 줄어들었어요.
사람들은 더 이상 동전을 믿지 못했고
결국 물건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았죠.
심지어 시민들은 동전의 가장자리를 몰래 깎아내
귀금속을 챙겼습니다.
노예들은 동전 자루를 흔들어 금가루를 모았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니 당시의 혼란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가시죠?
결국 화폐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로마 제국 쇠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돈의 가치를 함부로 건드린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컸어요.
흑사병이 할퀴고 간 자리 돈마저 흔들리다
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
이 무서운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제생활마저 뒤흔들어 놓았어요.
노동력이 급감하면서 물건 생산은 줄어드는데
시중에 풀려있던 돈의 양은 그대로니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물건값은 껑충 뛰었죠.
게다가 각국의 영주들은 이 혼란을 틈타
은 함량이 현저히 낮은 저질 동전
이른바 ‘쉰더링에‘를 마구 찍어내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어요.
인플레이션 역사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져 있답니다.
지폐의 등장 끝나지 않는 유혹
무거운 금속 동전 대신 가벼운 종이가
돈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플레이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돈의 양을
늘릴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편리함 뒤에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었어요.
스페인의 금빛 눈물과 독일 키퍼와 비퍼의 광기
16세기 신대륙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이야 이제 우리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다”
모두가 환호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죠.
갑자기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서
물건값만 미친 듯이 폭등했어요.
마치 요즘 “유동성이 너무 풍부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요?
당시 국왕이었던 펠리페 3세는 한술 더 떠
빚을 갚겠다며 동전에서 은을 쏙 빼돌리고
구리 함량을 높인 새 동전을 만들었어요.
그 결과 똑똑한 백성들은 진짜 은화는
장롱 깊숙이 숨겨두고 시장에는 저질 구리 동전만
넘쳐나게 되었죠.
좋은 돈은 사라지고 나쁜 돈만 돌아다니는 현상
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어요.
17세기 독일에서는 ‘키퍼 운트 비퍼’ 시대라는
황당한 역사가 펼쳐졌어요.
‘키퍼’는 저울을 기울여 좋은 동전을 골라내는 사람
‘비퍼’는 그 저울대를 뜻하는데요.
전쟁 자금이 부족해진 제후들이 동전의 은 함량을 줄여
몰래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시중에는
저질 동전이 홍수처럼 넘쳐났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죠.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독일 백성들의 생활은
그 악명 높았던 30년 전쟁 때보다도
훨씬 더 비참했다고 하니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과 아시냐 초인플레이션의 교훈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프랑스 대혁명.
하지만 혁명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웠던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었어요.
혁명 정부는 재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몰수한 교회 재산을 담보로 ‘아시냐(Assignat)’라는
새로운 지폐를 마구 찍어냈습니다.
처음에는 경제를 살리는 듯 보였지만
통제 불능 상태로 발행량이 늘어나면서
아시냐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결국 유럽 역사상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죠.
빵 한 덩어리를 사기 위해 지폐를 한아름
안고 가야 했고 농민들은 아예 아시냐를
받지 않으려 했다니 혁명의 이상이 돈 문제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입니다.
이처럼 근대의 인플레이션 역사는
정부의 무분별한 화폐 발행과
탐욕스러운 금융 투기가 만나
엄청난 파괴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똑똑히 보여줍니다.
초인플레이션의 공포와 자산버블의 허망함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든 우리 곁에서 재현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경고인 셈이죠.
20세기 이후 반복되는 초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그야말로
인플레이션 역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들을 연이어 경험하게 됩니다.
전쟁과 혁명 그리고 새로운 경제 이론의 등장은
돈의 가치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죠.
수레에 돈 싣고 빵 사러 가던 시절 바이마르 공화국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엄청난 전쟁 배상금에 짓눌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역사상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겪게 됩니다.
1923년 물가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표를 바꿔 붙여야 할
정도였어요.
빵 한 덩이를 사기 위해 돈다발을 손수레에 싣고
가야 했고 사람들은 월급을 받자마자
물건을 사재기하기에 바빴죠.
돈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지폐로 벽지를 바르거나
아이들 장난감으로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식당에서는 음료 두 잔을
동시에 주문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음료를 마시는 동안 두 번째 음료 가격이
올라버릴 정도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의 비극이었죠.
이러한 극심한 경제 혼란은 결국 히틀러가
등장하는 정치적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헝가리와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
헝가리에서는 1946년 하루 물가 상승률이
무려 207%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0이 무려 29개나 붙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주고
겨우 신문 한 장을 살 수 있었다니
숫자를 세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지경이었죠.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수십억 퍼센트라는
기록적인 초인플레이션으로
국제적인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돈이 그야말로 종잇조각만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죠.
경제학자들의 논쟁과 끝나지 않은 인플레이션 유령
이러한 뼈아픈 인플레이션 역사를 겪으면서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어요.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정부가 돈을 풀어
수요를 진작시키면 경제를 살릴 수 있고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때 전 세계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죠.
“실업률 5%보다는 인플레이션 5%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 안정보다는
고용 창출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전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케인스주의는 도전을 받게 됩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오히려 경제를 왜곡시키며
인플레이션을 통해 고용을 늘리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결국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됩니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금융정책을 통해
돈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닷컴버블에서 금융위기까지 자산버블의 그림자
그러나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밝아오면서
인플레이션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바로 ‘자산 인플레이션’ 즉 자산버블의 형태로 말이죠.
1990년대 말 전 세계를 휩쓴 ‘닷컴 버블’은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실체 없이 폭등했다가
한순간에 꺼져버린 대표적인 자산버블 사례입니다.
“묻지마 투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투기 광풍이 불었지만 거품이 꺼지자
수많은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절망해야 했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역시
부동산 시장의 거대한 자산버블이 붕괴하면서
시작된 재앙이었어요.
은행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주택 담보 대출을 남발했습니다.
이는 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인 폭등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거품 역시 영원할 수는 없었죠.
돈이 만들어낸 신기루가 사라지자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 뒤따랐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최근 몇 년간 특정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현상 기억하시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엄청난 돈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한 자산버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초인플레이션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처참한 폐허만 남았습니다.
달콤했던 자산버블의 축제가 끝나면
허탈한 쪽박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역사는 우리에게 돈의 가치는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탐욕과 비이성적인 기대가
만들어낸 거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터진다는
냉혹한 진리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울고 웃었던 역사 그 끝에서 얻는 것
조개껍데기에서 시작된 돈의 여정은
금속 주화를 거쳐 지폐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화폐로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죠.
바로 돈의 가치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반복되는 인플레이션 역사의
수레바퀴입니다.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한 국가의 경제 시스템 전체가 마비됩니다.
평생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비극이 펼쳐졌습니다.
반대로 특정 자산에 돈이 몰리며 만들어지는
자산버블은 한때 달콤한 환상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그 거품이 꺼지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죠.
우리는 이 파란만장한 인플레이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 발행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투기적인 열풍이 만들어낸 자산버블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돈의 가치는 결국 그 사회의 총체적인 생산력과
건전한 경제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돈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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