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철도는 단순한 강철 레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의 욕망과 불안, 파멸의 씨앗을 싣고 달리는
황금 마차였습니다.
어떻게 하나의 기술에 대한 희망이 온 나라를 거대한 카지노로 만들고,
수많은 벼락부자와 그보다 더 많은 파산자를 동시에 낳았을까요?
철도 광기(Railway Mania)라 불린 그 거대한 버블의 심장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철도의 왕, 탐욕의 기관사가 되다: 조지 허드슨의 시대
모든 거대한 광풍의 눈에는, 그 바람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구심점이 존재합니다.
1840년대 영국 철도 투기의 태풍의 눈에는
조지 허드슨(George Hudson)이라는, 시대가 낳은 영웅이자 괴물인 인물이 서 있었습니다.
요크셔 지방의 평범한 포목상이었던 그는
막대한 유산을 발판 삼아 철도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학식 있는 신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거친 요크셔 억양을 썼고, 비만한 체구에 식탐이 대단했으며,
종종 오만하고 무례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대를 꿰뚫는 비범한 통찰력과,
자신의 비전을 대중에게 전염시키는 악마적인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허드슨은 개별 노선이 아니라, 영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거대한 철도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자신의 철도 제국을 팽창시켰고,
그의 손길이 닿는 철도 회사의 주식은 어김없이 마법처럼 치솟았습니다.
대중은 그를 철도의 왕(The Railway King)이라 부르며 칭송했고,
그의 주주총회는 흡사 열광적인 부흥회와 같았습니다.
그는 주주들에게 연 10%에 달하는, 당시 국채 금리의 세 배가 넘는
파격적인 배당금을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의 기관실에서는 위험한 연료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허드슨의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비밀은 바로 대담한 회계 장부 조작이었습니다.
그는 실제 영업 이익이 부족하자, 미래의 철도 건설을 위해 걷은 자본금을
불법적으로 빼내어 배당금으로 지급했습니다.
투자자들은 당장 눈앞의 달콤한 배당금에 취해,
그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회사의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는 철도라는 새로운 종교의 위대한 교주이자,
그 제단의 가장 탐욕스러운 제사장이었습니다.
허드슨의 성공 신화는’철도 주식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황금알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켰고,
이제 영국은 모두가 투기라는 거대한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습니다.
전 국민이 도박사로: 스태그와 투기의 전염병
1840년대 중반, 영국 경제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풍작과 연 2%대의 초저금리로 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이 쏟아졌고,
넘쳐나는 돈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철도였습니다.
정부 또한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따라 시장 과열에 개입하기를 꺼렸습니다.
1845년 한 해 동안, 의회에 제출된 신규 철도 건설 계획안은 무려 1,200건,
필요 자본금 총액은 당시 영국 연간 GDP를 훌쩍 뛰어넘는 5억 6천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광기였지만, 아무도 그 열차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기의 최전선에는 스태그(stag)라 불리는,
시대가 낳은 기생적인 투기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공모주 전문 투자자 혹은 단타 트레이더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소액의 증거금만으로 주식 청약에 응모하여,
배정받은 주식 인수 권리(scrip)를 상장 직후 즉시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법은 대담하고 조직적이었습니다.
수십 개의 유령 회사를 만들거나, 하인, 친척, 심지어는 길거리 부랑자의 이름까지 도용하여
수천, 수만 건의 청약을 넣었습니다.
당연히 나머지 주식 대금을 납부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죠.
투기의 전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영국 사회 모든 계층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를 쓴 브론테 자매들마저,
자신들의 소중한 유산을 철도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았을 정도였습니다.
런던뿐만 아니라 리즈, 맨체스터, 리버풀 등 북부 산업 도시들에도
지방 주식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온 나라는 거대한 도박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예고된 탈선, 붕괴의 서곡
영원히 상승하는 주가는 없습니다.
1845년 가을, 모두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철도 투기의 급행열차도
마침내 속도를 잃고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철도 계획이 난립하면서, 필요한 토지, 자재, 노동력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영국 전체의 자본을 쏟아부어도 이 모든 노선을 완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붕괴의 서곡은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첫째는 아일랜드 대기근의 심화였습니다.
감자 마름병으로 수백만 명이 굶주리자, 영국 정부는 미국에서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입해야 했고, 이로 인해 영란은행의 금 보유고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둘째는 잉글랜드의 흉작이었습니다.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실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자, 영란은행은 마침내 금리 인상을 통해
시장의 과열된 유동성을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돈줄이 마르자, 싼 이자로 빚을 내 투기판을 전전하던
스태그들과 중산층 투자자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철도 회사들은 주주들에게 나머지 주식 대금을 납부하라는 콜(call)을 보냈지만,
이는 파산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패닉이 시장을 지배했고, 너도나도 주식을 내던졌지만 사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가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폐허 위에 남겨진 것들: 파괴와 창조의 이중주
철도 광기의 종말은 참혹했습니다.
영국 전역에서 수많은 중산층 가정이 파산했고, 비극적인 자살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한때 철도의 왕으로 군림했던 조지 허드슨은,
모든 회계 부정이 드러나자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여
유럽 대륙을 떠도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투기의 광풍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깊은 상처로 가득했고,
영국 경제는 극심한 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틔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투기 광풍은
영국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역설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투기꾼들이 쏟아부었던 그 막대한 자금은
영국 땅 위에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고 발전된 철도망이라는
물리적인 실체를 남겼습니다.
이 철도망은 영국의 산업 혁명을 완성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심장부를 뛰게 하는 강력한 동맥이 되었습니다.
파괴적인 투기가 역설적으로 창조적인 인프라를 낳은 것입니다.
1840년대 영국의 철도 광기는 단순한 과거의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술 혁신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반복되는,
인간의 희망과 탐욕, 그리고 집단적 광기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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