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몰락 12] – 베네수엘라 석유 국유화 정책이 실패로 끝난 과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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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11] – 한 국가가 무너지는 과정: 베네수엘라의 총체적 시스템 붕괴[베네수엘라의 몰락 13] – 베네수엘라 재정 정책 실패: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 못한 이유

지난 11편에 걸친 우리의 여정은, 베네수엘라라는 한 국가가 어떻게 총체적인 시스템 붕괴에 이르렀는지
그 복잡하고 비극적인 연쇄 반응을 추적해왔습니다.

우리는 경제의 뼈대(인프라), 혈관(금융), 뇌(인적 자본), 신경계(노동 시장),
그리고 면역 체계(정치와 제도)가 어떻게 차례로,
그리고 동시에 무너져 내렸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붕괴의 진원지,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자 끝이었던 바로 그곳,
석유 산업 자체로 돌아가려 합니다.

베네수엘라에게 석유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심장이자, 모든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생명줄이었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국가의 모든 부와 권력, 희망과 좌절이 바로 이 검은 황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는 이 마법과도 같은 거위를 어떻게 관리했을까요?
그들이 거위가 더 많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도록 잘 먹이고 보살폈을까요?
아니면, 당장의 황금알에 눈이 멀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을까요?

이 글에서는 근시안적인 이념과 정치적 오판이 국가 최대의 축복을
최악의 재앙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는 단순히 국제 유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의 유일한 부의 원천인 석유 생산 능력 자체를 스스로 파괴해버린,
명백한 정책 실패의 결과였습니다.

황금시대 (1914-1958) – 석유 대국의 탄생과 안정의 가치

베네수엘라의 석유 역사는 20세기 초,
마치 서부 개척시대처럼 혼란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의 거대 석유 회사들이 몰려들어 명확한 규칙도 없이 유전을 파헤쳤고,
정부는 이권을 둘러싼 부패와 암투로 얼룩졌습니다.

이 혼란을 잠재우고 석유 산업을 본궤도에 올린 것은,
역설적이게도 후안 비센테 고메스라는 강력한 독재자였습니다.

그의 장기 집권은 정치적 자유를 억압했지만,
동시에 예측 불가능했던 베네수엘라에 안정이라는 귀중한 자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유전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3년, 베네수엘라 석유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이정표가 세워집니다.
바로 탄화수소법(Hydrocarbons Law)의 제정입니다.

이 법은 이전까지 계약마다 제각각이었던 세금과 이권에 대한 규칙을,
투명하고 통일된 하나의 법으로 명문화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아무런 규칙 없이 진행되던 도박판에,
모두가 동의하는 명확한 게임의 룰을 만든 것과 같습니다.
저명한 제도경제학자들이 강조하듯, 이는 국가가 투자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약속(Credible Commitment)을 제공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 규칙은 갑자기 바뀌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라”는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명확하고 안정적인 규칙이 제공되자,
투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석유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순식간에 세계 3위의 산유국이자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황금시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첫 번째 교훈을 줍니다.
자원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정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 베네수엘라의 위대한 지식인 아르투로 우슬라르 피에트리(Arturo Uslar Pietri)는
석유를 심자(Sembrar el Petróleo)는 국가적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석유는 언젠가 고갈될 유한한 자원이므로,
석유로 번 돈을 도로, 항만, 발전소, 학교와 같은 영구적인 자산에 투자하여 국가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명한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벌어들인 막대한 석유 수입은
베네수엘라를 현대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운명적 전환점 (1958-1973) – 보존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이념

1958년, 길었던 군부 독재가 끝나고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정치적 전환은,
석유 정책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방향 전환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새롭게 집권한 민주 정부의 지도자들은 과거 독재 정권이 외국 석유 회사들에게
국가의 부를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강한 피해의식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외국 기업들은 국가의 신성한 자원을 약탈해가는 탐욕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분노 속에서, 석유를 심자는 실용적인 철학은
보존(Conservación)이라는 이념적이고 위험한 철학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존 철학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석유는 고갈될 운명의 신성한 자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함부로 많이 생산해서는 안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최대한 아껴두어야 하며, 지금 파내는 한 방울의 석유에서는 국가가 가능한 한 최대의 몫을 가져와야 한다.”

이 이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창설을 주도한 베네수엘라의 석유부 장관 후안 파블로 페레스 알폰소(Juan Pablo Pérez Alfonzo)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는 석유를 “악마의 똥(the devil’s excrement)”이라고 부르며,
그 풍요가 가져올 저주를 경고할 정도로 석유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 이념은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정부는 외국 석유 회사들에게 부과하는 세금과 로열티를 경쟁적으로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가 석유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둘째, 정부는 더 이상 외국 기업에게 새로운 유전 개발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며,
1983년에 만료되는 기존의 개발권도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보존 정책이 완전히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는 국제 유가가 비교적 낮았고,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자원 고갈론이 힘을 얻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이 정책은 베네수엘라가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석유 투자처가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바로 그 시기, 중동에서는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거대한 유전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외국 석유 회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한쪽에는 세금은 계속 오르고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는 베네수엘라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석유를 퍼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땅 중동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명백했습니다.
그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기존 시설의 유지 보수마저 소홀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70년 하루 370만 배럴을 정점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는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위대한 오판 (1973-1988) – 거품을 현실로 착각하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석유 파동은 국제 유가를 하늘로 쏘아 올렸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에게, 이것은 자신들의 보존 정책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증명하는 신의 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유가 폭등처럼 자신들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과 같은 반대 정보는 무시하는, 일종의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새로운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 위대한 오판은, 이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던 석유 정책에 더욱 가속 페달을 밟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부는 이 성공의 경험에 도취되어,
생산량을 더욱 통제하고 석유 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정점은 1976년의 석유 산업 전면 국유화였습니다.
이제 모든 석유는 국가 기업인 페데베사(PDVSA)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PDVSA는 유능한 기술 관료들에 의해 비교적 전문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개입에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와 OPEC 회원국들이 인위적으로 유가를 높게 유지하자,
나머지 세계는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석유를 대체할 원자력, 천연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거대 석유 회사들은 OPEC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북해, 알래스카, 멕시코만 등지에서
새로운 유전을 찾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결국 1980년대 중반, 이 거대한 거품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국제 유가는 폭락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베네수엘라는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그들은 스스로의 생산 능력을 갉아먹고,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 시장의 점유율을 경쟁국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습니다.

한때 현명해 보였던 보존 정책은,
결국 국가를 파멸로 이끈 가장 큰 오판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잃어버린 10년 (1989-1998)과 실패한 회복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1990년대, 베네수엘라 정부는 뒤늦게 아페르투라 페트롤레라(Apertura Petrolera),
즉 석유 산업 개방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너무 소극적이었고, 너무 늦었습니다.

한번 계약을 파기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에 대해,
투자자들은 쉽게 신뢰를 회복하지 못합니다.
국가의 평판(Country Reputation)은 한번 잃으면 되찾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가장 유망하고 생산성이 높은 핵심 유전들은
여전히 국영기업인 PDVSA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미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한계 유전(Marginal Fields)만을 개방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매장량을 차지하는 오리노코 벨트의 초중질유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분야였기에 더욱 외국 자본의 협력이 절실했지만,
정부는 가장 좋은 조건을 내주는 데 인색했습니다.

당연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제한적인 개방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석유 생산량은 소폭 회복되는 데 그쳤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황금알을 낳던 거위는 이미 병들고 굶주려 거의 죽기 직전이었고,
뒤늦게 내민 모이 몇 알로는 거위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결론: 스스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다

베네수엘라 경제 붕괴의 첫 번째 단추는,
바로 이 석유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서 잘못 끼워졌습니다.

그것은 불운이나 외부 환경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석유는 아껴 써야 한다”는, 겉보기에는 애국적이고 신중해 보였던 이념이
어떻게 국가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하고 비극적인 정책 실패의 역사입니다.

생산량을 통제하고 외국 자본을 배척했던 민족주의적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고 정부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유일한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 산업의 생산 능력 자체를 파괴하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외부 충격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허약한 경제 구조를 고착시켰습니다.

그들은 황금알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갈랐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죽인 것은, 바로 미래의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의 유일한 수입원이자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 산업이 이렇게 스스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렇게 줄어드는 수입을 가지고 국가 재정을 어떻게 운영했을까요?
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에 대비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과거의 환상에 젖어 흥청망청 돈을 썼을까요?

다음 13편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재정 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정부의 예산, 즉 씀씀이의 역사를 통해, 유가 급등의 호황기는 어떻게 낭비되었고,
유가 폭락의 불황기는 어떻게 잘못 관리되었는지,
그리하여 국가를 어떻게 부채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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