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몰락 13] – 베네수엘라 재정 정책 실패: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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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12] – 베네수엘라 석유 국유화 정책이 실패로 끝난 과정 분석[베네수엘라의 몰락 14] – 베네수엘라 재분배 시스템 실패 원인과 복지 정책의 함정

지난 12편에서 우리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심장이자
모든 부의 원천이었던 석유 산업 자체가 어떻게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인해
스스로 붕괴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이 비극은,
국가의 유일한 수입원이 고장 났음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 운영의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심장부,
바로 국가의 가계부, 즉 재정 정책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한 국가의 재정 정책이란, 간단히 말해 나라의 돈 씀씀이를 관리하는 기술입니다.
정부가 얼마를 벌고(세수), 얼마를 쓰며(지출),
만약 돈이 남거나 모자라면 어떻게 대처하는지(저축 또는 부채)에 대한
모든 결정을 포함합니다.

평범한 가정에 비유해 봅시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가장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계획적으로 소비하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빚을 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 집안의 수입이,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로또 당첨금처럼 극도로 불안정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해에는 수십억 원이 들어왔다가, 다음 해에는 수입이 0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극단적인 변동성 속에서 과연 현명한 살림살이가 가능할까요?

이것이 바로 베네수엘라가 평생 마주해야 했던 재정적 현실이었습니다.
국가의 가계부는 국제 유가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룰렛 게임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 글은, 이 살얼음판 같은 재정 환경 속에서 베네수엘라 정부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떻게 국가를 파산의 길로 이끌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흔히 알려진 방만한 재정이라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우리는 호황기에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와,
불황기에 맞닥뜨린 딜레마의 본질을 파헤쳐 볼 것입니다.

1부: 검은 황금의 대홍수 – 1970년대 석유 호황의 규모

베네수엘라의 재정 실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70년대에 그들이 맞았던 석유 호황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규모였는지부터 체감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황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대홍수에 가까웠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돈벼락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터지면서,
베네수엘라 정부의 석유 수입은 그야말로 수직으로 상승했습니다.

단 1년, 1973년에서 1974년 사이에 증가한 정부 수입만 해도,
1973년 국가 전체 GDP의 34.5%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1974년부터 1985년까지 약 10년간, 유가 상승으로 인해 추가로 벌어들인 돈은,
1973년 GDP의 5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오늘날 미국 경제에 대입해 봅시다.
이는 마치 미국 정부가 향후 10년간, 현재의 모든 세금 수입 외에
추가로 87조 달러(약 12경 원)의 공돈을 하늘에서 받는 것과 같은 규모의 충격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한 국가가 이처럼 단기간에,
이처럼 거대한 부의 이전을 경험한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무후무한 돈벼락 앞에서 국가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요?
경제학의 교과서적인 답변은 명확합니다.
거의 모든 돈을 저축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흡수 능력의 한계

경제는 스펀지와 같습니다.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른 스펀지에 갑자기 너무 많은 물을 부으면,
스펀지는 물을 흡수하기는커녕 주변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국가가 단기간에 건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투자의 양에는
명백한 한계, 즉 흡수 능력이 존재합니다.

이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돈은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산 거품, 물가 폭등(인플레이션), 그리고 총체적인 비효율이라는 홍수를 일으킬 뿐입니다.

소비 평탄화의 원칙

현명한 개인은 로또에 당첨되면, 그 돈을 1년 만에 모두 탕진하지 않습니다.
은행에 넣어두거나 투자를 해서, 평생에 걸쳐 조금씩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사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 평탄화의 원칙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시적인 횡재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국가 전체의 생활 수준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영구히 향상시키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을 따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바로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석유 수입의 거의 전부를 국부펀드에 적립하여 해외에 투자하고,
그 운용 수익의 일부만을 매년 국가 예산으로 가져와 사용합니다.
이는 국내 경제가 과열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부를 축적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2부: “지금 다 써라!” – 호황기에 저지른 치명적 실수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교과서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이 대홍수를 막을 댐을 쌓는 대신, 오히려 댐을 부수고 온 나라를 돈의 홍수에 잠기게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1. 저축의 실종

국부펀드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과 단기적인 유혹 앞에서,
그러한 장기적인 계획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벌어들인 석유 달러를 해외에 저축하는 대신,
거의 전액을, 그것도 벌어들이는 즉시 국내에 쏟아붓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1974년부터 1985년까지 이어진 기나긴 호황기 동안,
정부 재정은 평균적으로 거의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로또 당첨자가 당첨금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모두 써버린 것과 같은 행태였습니다.

2. 돈은 어디로 갔는가? – ‘위대한 베네수엘라’ 프로젝트의 허상

그렇다면 이 천문학적인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처음에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베네수엘라 투자 기금(FIV)’이라는 기관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산업 프로젝트, 즉 ‘위대한 베네수엘라(La Gran Venezuela)’ 계획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철강, 알루미늄, 석유화학, 수력 발전 등, 국가 주도의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여
석유 이후를 대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곧 방향을 잃었습니다.
호황이 길어지자, 돈의 흐름은 장기적인 투자에서
단기적인 소비로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공공 부문의 비대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부 조직의 비대화였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부처와 수많은 국영기업을 만들어냈고,
이곳에 일자리를 원하는 지지자들을 대거 채용했습니다.
공무원과 국영기업 직원의 월급은 계속해서 인상되었습니다.

보조금의 남발

정부는 사실상 모든 것에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휘발유 가격은 물보다 쌌고,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은 거의 공짜였습니다.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에도 막대한 보조금이 붙었습니다.

이러한 지출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극도로 어려운 경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투자는 경기가 나빠지면 중단할 수 있지만, 한번 지급하기 시작한 공무원 월급과
국민들에게 약속한 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저항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3. 과열된 경제, 터져버린 거품

이처럼 막대한 돈이 한꺼번에 국내 시장에 풀리자,
경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상품을 쫓아다니는’
전형적인 초과 수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물가는 치솟았고, 평범한 시민들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거대한 정부 지출은 네덜란드 병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모든 자본과 인력이 정부 프로젝트와 관련된 건설, 서비스 부문으로만 몰려들었고,
석유를 제외한 다른 모든 민간 제조업과 농업은 완전히 고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경제의 체질은 더욱 기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3부: 불황의 시작과 고통스러운 조정 – 예상 밖의 진실

1980년대 초반, 마침내 유가 거품이 꺼지고 불황이 닥쳐왔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재정 수입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네수엘라 재정사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와 마주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통념은 이렇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호황기에 흥청망청 돈을 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불황기에도 계속해서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했다.
그 결과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이 통념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진실은, 유가 수입이 붕괴하자 베네수엘라 정부가 실제로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정 과정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신속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단행된 지출 삭감

정부는 실제로 정부 지출을 극적으로 줄였습니다.
특히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삭감된 것은 바로 투자 지출이었습니다.
새로운 도로와 발전소 건설 계획은 모두 백지화되었습니다.
정부 소비 지출 역시 상당 부분 줄였습니다.

새로운 세원 발굴 노력

더 놀라운 것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 외에 다른 곳에서 세금을 걷으려는,
현대사에서 거의 처음 있는 진지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부가가치세(VAT)를 도입하고,
소득세 징수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정부가 실제로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걷으려 노력했다면,
왜 경제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고, 국가 부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요?

4부: 진짜 재정 비극 – 호황의 유산이 불황을 파괴하다

여기에 바로 베네수엘라 재정 실패의 핵심적인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문제는 불황기의 조정 과정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조정을 시작해야 했던 출발점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높았고,
조정이 이루어지던 운동장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추론 1: 너무 높았던 출발점의 저주

베네수엘라의 재정적 원죄는 불황기에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바로 호황기에 저질러진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정부 지출은 정상적인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팽창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에 재정 수입이 반 토막 났을 때,
정부가 지출을 아무리 큰 폭으로, 고통스럽게 삭감해도 적자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출발점 자체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추론 2: 축소되는 경제라는 함정

더 치명적인 문제는, 이 재정 긴축이
이미 붕괴하고 있던 경제 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재정 긴축(정부 지출 삭감)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경제는 이미 생산성 붕괴로 인해 스스로 수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끔찍한 ‘재정적 캐치-22’ 함정을 만들어냈습니다.

  1.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 지출을 삭감합니다.
  2. 정부 지출 삭감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더욱 위축시켜, GDP를 감소시킵니다.
  3. GDP가 감소하자, 세금 수입은 예상보다 더욱 줄어듭니다.
  4. 세금 수입이 줄어들자, 재정 적자는 애초의 예상보다 더 커집니다.
  5. 더 커진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지출을 더 삭감해야 하고, 이는 다시 경제를 더 위축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소용돌이입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 부채 비율(GDP 대비 부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단순히 빚이 늘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GDP라는 분모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론 3: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딜레마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정부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긴축을 감수하며 깊은 경기 침체의 터널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환율 평가절하라는 마법처럼 보이는 유혹에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환율 평가절하란, 자국 화폐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 1달러에 1,000원이던 환율을
오늘부터 1달러에 2,000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부가 가진 1달러의 석유 수입은
장부상 1,000원의 가치에서 2,000원의 가치로 두 배가 됩니다.
이는 정부 재정에 잠시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악마의 거래였습니다.
환율 평가절하는 본질적으로 돈을 더 찍어내는 것과 같아서,
필연적으로 끔찍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합니다.

결국 베네수엘라 정부는 부채라는 괴물 스킬라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사이의 좁은 해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평가절하를 선택했고,
그때마다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는 경제를 더욱 깊은 혼돈 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결론: 스스로 만든 침대에서 잠들다

결론적으로, 베네수엘라 재정 붕괴의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980년대 이후의 재정 위기는, 정부가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고통스러운 긴축과 세제 개혁을 포함한, 나름의 합리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진짜 비극과 실패는, 1970년대의 유례없는 호황기에 저질러졌습니다.
국가의 흡수 능력을 완전히 무시한 채, 미래를 위한 저축 대신
단기적인 소비와 비효율적인 투자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들의 선택이,
이미 1980년대 이후의 모든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지러 놓은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잠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 국가의 재정이 이처럼 파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국가가 더 이상 국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음 14편에서는, 이러한 국가 실패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히 소득 분배와 빈곤의 문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부는 어떻게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그 불평등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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