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몰락 02] – 베네수엘라 망가진 인프라: 도로, 전기, 수도 – 나라를 무너뜨린 가장 쉬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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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01] – 자원의 저주 : 남미 최고 부자에서 최빈국으로[베네수엘라의 몰락 03] – 베네수엘라 금융 붕괴: 돈이 돌지 않는 나라의 최후와 크라우딩 아웃

지난 편에서 베네수엘라 붕괴의 거시적 원인인 ‘자원의 저주’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병의 외부 증상일 뿐입니다.
이 글은 경제의 생명 유지 장치인 생산성이 어떻게 멈추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핵심은 경제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총요소생산성(TFP)이란 무엇인가?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 노동력, 오븐이라는 생산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재료와 사람, 장비를 가지고도 A빵집의 빵이 B빵집보다 월등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바로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총요소생산성입니다.
그것은 A빵집만의 특별한 레시피, 제빵사들의 숙련도, 효율적인 주방 동선
그리고 더 좋은 빵을 만들려는 혁신적인 노력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즉, 총요소생산성(TFP)는 단순히 투입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 경제의 진정한 실력
효율성, 그리고 혁신 역량을 나타내는 종합적인 건강 지표인 셈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진짜 비극은 1970년대 이후 이 마법의 레시피를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1978년 이후 비석유 부문 성장의 추락은 자본 투자 감소와
총요소생산성의 급락이라는 두 가지 암세포가 거의 동일한 비율로 경제를 갉아먹은 결과입니다.

생산성 붕괴의 진짜 원인: 공공 인프라

그렇다면 생산성은 왜 폭락했을까요?
수십 년간 쏟아져 들어온 석유 달러는 왜 베네수엘라의 근본적인 능력 자체를 키우지 못했을까요?
그 진실은 국가 경제의 뼈대이자 혈관 역할을 하는
공공 인프라(Public Infrastructure)의 체계적인 붕괴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도로, 전기, 수도, 통신망이 바로 인프라입니다.
이 뼈대가 부러지고 혈관이 막힌다면 아무리 우람한 근육(민간 기업)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괴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네수엘라는 화려한 근육에 취해 스스로의 뼈대가 삭아 내리는 것을
수십 년간 방치했고 이는 생산성 붕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프라가 경제를 살리는 3가지 방식

인프라는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첫째, 잘 갖춰진 인프라는 경제 활동의 모든 거래 비용을 마법처럼 줄여줍니다.
베네수엘라 농부가 세계 최고의 망고를 재배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하지만 농장에서 시장까지 가는 길이 비포장도로라면
운송 중에 망고의 절반은 흠집이 나고 시간과 유류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처럼 좋은 인프라는 경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마찰을 줄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강력한 윤활유입니다.

둘째, 인프라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유발하는 성공의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최첨단 의류 공장을 지으려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전기가 나간다고 상상해 봅시다.
원단 수입은 항만 시설이 낡아 몇 달이 걸리고 물류비는 천정부지로 솟습니다.
아마 당신은 투자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는 인프라라는 판을 먼저 깔아줌으로써 민간 투자를 유인하고 촉진하는 마중물 효과를 가집니다.

셋째, 인프라는 각 부분을 연결하여 그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네트워크 효과를 가집니다.
전화기 한 대는 쓸모없지만 100만 대가 있으면 거대한 가치가 창출됩니다.
전국의 도시와 공단, 항만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인프라망은
국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전체의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인프라 투자

이러한 인프라 투자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대한민국의 경부고속도로입니다.
1960년대 말 세계은행까지 나서 “나라에 자동차도 몇 대 없는데 무슨 고속도로냐”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길이 없어서 자동차가 없는 것이라며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이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대동맥이 되었습니다.

이는 인프라가 단순히 현재의 수요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수요를 창출하고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경부고속도로 수백 개를 짓고도 남을 석유 달러가 있었지만
그 돈은 국가의 뼈대를 세우는 데 쓰이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재정 긴축을 이유로 인프라 예산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손쉽게 삭감했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1977년과 2001년 사이 베네수엘라의 근로자 1인당 공공자본은 무려 29.1%나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한창 성장해야 할 국가가 스스로의 성장판을 닫아버린 것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인프라 붕괴가 불러온 연쇄 파멸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인프라 붕괴가 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인프라 붕괴는 인적 자본의 가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능한 엔지니어를 꿈꾸는 학생은 불안정한 전기와 인터넷 때문에 코딩을 할 수 없습니다.
실력 있는 의사는 정전 때문에 수술을 중단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물리적 플랫폼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둘째, 인프라 붕괴는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폭발시켰습니다.
공공 서비스의 붕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부유층은 자가 발전기와 물탱크, 사설 경비원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암흑과 단수, 범죄의 공포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 극심한 박탈감은 훗날 베네수엘라를 극단적인 정치 대립으로 몰고 간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론: 뼈대 없는 경제의 비극적 교훈

베네수엘라의 생산성은 왜 붕괴했을까요?
핵심적인 원인은 경제의 뼈대, 즉 공공 인프라를 스스로 허물어뜨렸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는 만약 베네수엘라가 인프라 투자를 줄이지만 않았어도
1인당 GDP가 현실보다 37%는 더 높았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제 우리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뼈대가 어떻게 삭아 내렸는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신체에는 뼈대와 더불어 원활한 혈액 순환이 필수적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자본이라는 혈액을 공급하는 금융 시스템마저
어떻게 막히고 괴사했는지 그 치명적인 사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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