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해회사 버블, 정부가 설계한 18세기판 묻지마 투기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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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정부가 국민의 빚을 담보로 거대한 투기판을 벌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 아이작 뉴턴조차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고 한탄하게 만든 사건.

이것은 바로 영국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금융 쓰나미,
남해회사 버블의 이야기입니다.


국가가 보증한 탐욕, 18세기 영국을 삼킨 남해회사 버블

1720년 런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막 끝나고,
전쟁으로 누적된 막대한 국가 부채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습니다.
바로 그때, 프랑스에서 들려온 소식은 영국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금융 천재 존 로(John Law)가 미시시피 회사를 통해
프랑스의 국가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며 전대미문의 주가 폭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 대영제국이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열망과 불안의 한가운데,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가 구원자처럼 등장했습니다.

남해회사는 영국 정부에게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바로 영국 정부가 국민에게 갚아야 할 막대한 빚(국채)을
자신들의 주식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윈-윈’ 게임처럼 보였습니다.
정부는 빚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국채를 가진 국민들은 무한한 성장이 기대되는 황금 주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남해회사는 이 거대한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의 핵심에는 치명적인 악마의 속삭임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모두가 더 큰 부자가 된다는 거대한 착각이었습니다.

남해회사는 정부의 빚을 인수하는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신주를 발행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만약 주가가 액면가인 100파운드라면, 100파운드의 빚을 1주의 주식으로 바꿔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주가가 1,000파운드로 폭등한다면?

회사는 단 0.1주의 가치로 100파운드의 빚을 해결하고,
나머지 0.9주에 해당하는 주식은 시장에 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채권자 역시 100파운드짜리 국채가 순식간에 1,000파운드짜리 주식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부, 회사, 투자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완벽한 연금술처럼 보였습니다.
이 거대한 투기 기계의 엔진은 이제 막 시동이 걸렸고,
그 연료는 다름 아닌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었습니다.


교회와 왕실, 모두가 투기꾼이 된 시대

남해회사 버블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사회의 모든 벽을 허물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런던 금융의 중심지, 익스체인지 앨리(Exchange Alley)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귀족, 상인, 성직자들이 뒤섞여 “남해회사 함대가 스페인의 보물선을 나포했다더라!”,
“페루의 은광 독점 채굴권을 따냈다더라!” 같은 근거 없는 뜬소문들을 주고받으며
주가를 밀어 올렸습니다.

투기의 열기는 왕실과 의회까지 집어삼켰습니다.
조지 1세 국왕마저 남해회사 주식에 거액을 투자했고,
이는 국민들에게 이 투자는 국가가 보증하는 안전한 사업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남해회사 이사들은 영향력 있는 정치가들과 왕의 정부들에게
막대한 양의 주식을 뇌물로 상납하거나 유리한 조건의 스톡옵션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을 비롯한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이 부패의 사슬에 깊숙이 연루되었습니다.
이제 남해회사 주식의 상승은 단순한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비호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과학과 이성의 상징이었던 아이작 뉴턴 경마저 이 광풍에 휩쓸렸습니다.
그는 초기에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매도했지만,
주가가 계속해서 폭등하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최고점에서 다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버블 붕괴로 2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잃고 말았고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성들의 참여 또한 폭발적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은 보석을 저당 잡혀 투자금을 마련했고,
하녀들은 평생 모은 푼돈을 남해회사 주식에 쏟아부었습니다.


버블 속의 버블: 상식을 조롱하는 광기

남해회사라는 거대한 버블이 팽창하면서,
그 주변에는 더 작고 기괴한 자식 버블(child bubbles)들이 무수히 태어났습니다.
주식이라는 단어가 붙기만 하면 무엇이든 돈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원히 돌아가는 바퀴 개발 회사”, “스페인 노새 수입 회사”,
“톱밥을 압축해 목재로 만드는 회사” 등 황당한 회사들이 난립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정점에는 금융 사기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문구로 기록된 회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사업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회사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회사는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파운드의 투자금을 모았고,
그 설립자는 그 돈을 들고 다음 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보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군중심리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남해회사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의회에 로비하여 버블 법(Bubble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의회의 정식 허가 없는 주식회사 활동을 금지하는 이 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수많은 자식 버블들이 터지면서 돈을 잃은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렸고,
그 공포는 곧 ‘어머니 버블’인 남해회사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정점에서 나락으로: 블랙 목요일의 비명

1720년 여름, 남해회사 주식은 1,000파운드라는 경이적인 정점을 찍었습니다.
연초 대비 8배 이상 폭등한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축제에는 끝이 있는 법.
정점에 도달한 순간부터, 버블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사들과 정치인들은 이미 여름부터
비밀리에 자신들의 주식을 처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투자자들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주가는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완만했던 하락세는 공포와 패닉을 만나 가파른 절벽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매도 주문을 냈지만,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8월 초 800파운드대였던 주가는 9월 말에는 200파운드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영국 전역이 파산과 절망의 비명으로 가득 찼고,
분노한 군중은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가 책임자들을 처단하라고 외쳤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남해회사 이사들과 정부 각료들 사이의
추악한 뇌물 거래와 부패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재무부 장관은 투옥되었고, 남해회사 이사들은 전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버블이 남긴 상처와 역설적 유산

남해회사 버블의 붕괴는 영국 사회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주식회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극심한 불신이 생겨났고,
버블 법은 이후 100년 이상 영국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억압하며
산업 혁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기극과 파멸의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교훈과 제도를 남겼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투기판의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시장의 건전성을 감독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기업의 회계 투명성과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감시의 필요성을 각인시켰습니다.

1720년 영국의 이야기는 3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외침이 시장을 지배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그 거품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국가가 보증하고 최고의 지성들이 참여했던 거대한 투기판의 비극적인 종말은
인간의 탐욕이 이성을 마비시킬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상 가장 생생하고도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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