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 시대 월스트리트: 미국 자본주의의 탄생과 투기꾼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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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주먹이, 도덕보다 탐욕이 앞섰던 시대.
증기기관과 전신의 힘으로 미국을 건설한 거인들은
동시에 주식 시장을 거대한 도박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의 역사가 아닌, 자본주의의 가장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얼굴에 대한 기록입니다.

남북전쟁의 폐허 위에 선 탐욕의 시대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은 언제나 파괴의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기회의 씨앗을 틔웁니다.

1865년, 링컨의 통합된 공화국이라는 이상이 승리하고 남북전쟁의 포성이 멎었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거대한 폐허 위에 서 있었습니다.

6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피가 대지를 적셨고,
남부의 경제는 송두리째 파괴되었으며,
사회는 깊은 분열과 상처로 신음했습니다.

하지만 이 끔찍한 파괴는 역설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눈부신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기존의 낡은 질서, 즉 남부의 농장주 귀족 사회와
그에 기반한 느슨한 경제 구조를 완벽하게 파괴해 버렸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북부의 산업 자본과 양키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의 거침없는 에너지였습니다.

재건이라는 시대적 과업은 단순히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것을 넘어,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전체를 새로 설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동력은 숭고한 애국심이나 공동체 의식이 아닌
지극히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부에 대한 욕망이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의 가치를 뒤흔들었습니다.
인명은 하찮아졌고, 전통적인 도덕률은 생존의 논리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정부 계약을 따낸 자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군수품을 빼돌리거나 밀수를 통해 돈을 번 졸부들이 사회의 새로운 상류층으로 떠올랐습니다.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어떻게든 살아남고 한몫 챙기려는 약삭빠름이 새로운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전도는 전후 사회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세대에게, 평화로운 시기의 점잖은 비즈니스는
너무나 시시하고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처럼 빠르고 대담하게, 그리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부를 쟁취하기를 원했습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기회의 땅이자 동시에 무한 경쟁의 전쟁터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이 가장 농축된 형태로 발현된 곳이 바로 뉴욕의 월스트리트였습니다.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한 막대한 양의 국채와 그린백 지폐는
금융 시장에 전례 없는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요동치는 국채 가격과 금값은 그 자체로 거대한 투기판을 형성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어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되거나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투기라는 짜릿하고 위험한 마약의 맛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이 투기의 에너지는 이제 국가의 재건과 팽창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옮겨갔습니다.

철도, 석유, 철강, 통신…
새로운 산업들이 마치 거대한 카지노의 테이블처럼 차려졌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의 폐허 위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화려하고 동시에 가장 추악한 시대, 도금 시대는 그렇게 그 서막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법이 잠든 거리, 원시의 월스트리트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월스트리트, 즉 수많은 규제와 감시 시스템,
복잡한 법률로 촘촘하게 얽힌 금융의 심장부는 도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월스트리트는 법이 잠든 거리,
아니 법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원시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질서보다 혼돈이, 규칙보다 힘이 우선하는,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지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중 하나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설립된 것은
1929년 대공황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겪고 난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도금 시대의 투자자들은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정글에 맨몸으로 던져진 것과 같았습니다.

주식의 발행부터 거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사실상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았습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재무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부채가 얼마인지, 수익은 제대로 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경영진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이익을 부풀리거나 손실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중범죄에 해당하는 내부자 거래는
당시에는 현명한 투자의 한 방식으로 여겨졌습니다.

회사 경영진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이를 막을 법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주가 조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몇몇 유력한 투기꾼들이 공모하여 특정 주식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자신들끼리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를 통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폭락시키는 행위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이러한 법적 공백은 월스트리트를 소수의 내부자들을 위한 거대한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식 시장은 정보에 어두운 다수의 외부자
즉 일반 투자자들을 합법적으로 약탈하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사기 시스템에 가까웠습니다.

시대의 혈맥이자 투기의 제물, 철도

도금 시대의 서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철도입니다.
철도는 이 시대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습니다.

그것은 미국을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묶는 물리적 혈맥이었고,
산업화의 심장이었으며, 서부 개척의 첨병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에게 가장 달콤하고 거대한 먹잇감이기도 했습니다.

철도 회사의 주가는 당장의 수익성보다, 앞으로 연결될 도시의 성장, 개발될 미지의 땅,
그리고 창출될 새로운 시장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이는 투기꾼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조작의 여지를 제공했습니다.

더욱이,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철도 건설을 장려하기 위해
회사들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했습니다.

철도 회사들은 기차를 운행하는 운송업체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땅을 소유한 부동산 개발업체이기도 했습니다.

이 막대한 토지의 잠재 가치는 회사의 실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투기꾼들이 주가를 부풀릴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또한, 철도 회사의 복잡한 소유 구조와 회계 방식은
내부자들의 조작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무법자들은 이 거대한 제물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고,
철도 위에 자신들의 탐욕의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탐욕의 도화선: 콜론과 사회적 다윈주의

만약 도금 시대의 투기가 거대한 화약고였다면,
그곳에 불을 붙이고 폭발력을 극대화한 도화선은 바로 콜론 시스템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주식담보대출 또는 미수 거래와 유사한 이 제도는,
은행이나 자금력이 풍부한 개인 대부업자들이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하루 만기의 초단기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대출금을 이용해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었고,
이는 적은 자기 자본으로도 훨씬 큰 규모의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레버리지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유혹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었습니다.
콜론은 이름 그대로, 대출 기관이 언제든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대출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이 조금이라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거나 담보로 잡힌 주식의 가치가 하락하면,
은행들은 즉시 대출금 회수, 즉 마진콜에 나섰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환 요구에 직면한 투자자들이 돈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었고, 한두 명의 투매는 곧 수백, 수천 명의 투매로 이어져
시장 전체를 순식간에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특히 미국 경제가 아직 농업 중심이었던 당시,
가을 수확기가 되면 농작물 거래와 운송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서부 농업 지대로 이동해야 했기에
뉴욕의 은행들은 월스트리트의 콜론 자금을 대거 회수했고,
이는 월스트리트의 가을 공황이라는 연례행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무자비한 투기꾼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약탈적인 행위를 일삼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미화하기까지 했던 강력한 시대정신,
바로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이름의 망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체계화된 이 사상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특히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에게 인간 사회는 냉혹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정글과 같았고,
이 경쟁에서 부와 권력을 차지한 강자는 유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적자이며,
가난하고 실패한 약자는 열등한 부적자일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도금 시대 미국의 지배 계층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급격하게 벌어지는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 독점 자본의 횡포에 대한 완벽한 변명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코닐리어스 밴더빌트나 제이 굴드 같은 인물들은 자신들을 무자비한 약탈자가 아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위대한 적자이자 미국 경제를 발전시키는 영웅으로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탐욕을 미덕으로, 약탈을 진보로 둔갑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연금술이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월스트리트의 무법자들은 스스로가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기관사라고
굳게 믿으며 탐욕의 기관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지배한 무법자들

이 법이 잠든 거리 위에서, 미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무자비한 무법자들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의 등장: ‘제독’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최초로 왕좌를 세운 인물이 있다면, 그는 단연코 제독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였습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가난한 뱃사공 아들로 태어나 미국 최대의 증기선 제국을 건설한 그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주력 사업이었던 해운업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전쟁터인 철도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밴더빌트가 월스트리트에 가져온 것은 단순히 막대한 자금력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식 시장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에게 주식은 사고파는 종잇조각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권 그 자체,
즉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특정 철도 회사를 목표로 삼으면, 시장에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주식을 매집하여 경영권을 빼앗았습니다.

일단 회사를 장악하면, 그는 특유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효율적인 경영 방식으로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기업 사냥꾼이나 행동주의 펀드라고 부르는 이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업상의 문제로 법에 호소하라는 조언에 그가
“법이요? 내가 힘을 갖고 있는데 법이 무슨 소용이오!”라고 일갈했듯,
그에게 법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거나 돈으로 살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무자비한 독재자였지만, 동시에 유능한 건설자이기도 했던 코닐리어스 밴더빌트는
월스트리트에 ‘힘이 곧 정의’라는 냉혹한 법칙을 새겨 넣은 최초의 제왕이었습니다.

경건한 악마: ‘큰 곰’ 대니얼 드루

만약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힘으로 시장을 정복한 폭군이었다면,
그의 가장 끈질긴 라이벌이었던 대니얼 드루는 교활한 지략과 위선으로 시장을 농락한 경건한 악마였습니다.

깡마르고 볼품없는 외모에 늘 낡은 농부의 옷차림을 하고 다녔던 그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서 드루 신학교를 설립하고 교회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며
경건한 자선사업가의 명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끝나면,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동료 투자자들의 등에 칼을 꽂았습니다.

그의 별명은 큰 곰이었는데, 이는 그가 주가 하락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공매도에 능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특기는 특정 주식을 빌려서 시장에 내다 판 뒤, 온갖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리거나
내부자 정보를 활용하여 주가를 폭락시키고, 싼값에 주식을 다시 사서 갚아 그 차익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악마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발명품은 바로 주식 물타기였습니다.
젊은 시절 가축 몰이꾼이었던 그는 소를 시장에 내다 팔기 직전,
소금물을 잔뜩 먹여 일시적으로 무게를 불리는 수법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이 비열한 수법을 월스트리트에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자신이 경영권을 가진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비밀리에 이사회를 열어 대규모 신주를 발행한 뒤,
이 주식을 시장에 몰래 내다 팔아 주가를 폭락시켰습니다.

그는 신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탐욕을 채웠던,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위선적이고 기괴한 투기꾼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제이 굴드

월스트리트의 역사에서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단연코 제이 굴드입니다.

작고 병약한 체구, 창백한 얼굴에 검은 수염을 기른 그는 늘 조용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미국 경제를 뒤흔드는 거대한 음모를 설계하고 실행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월스트리트의 메피스토펠레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주식 시장을 단순한 투기판이 아닌,
체계적인 전략과 음모를 통해 상대를 파멸시키는 거대한 전쟁터로 인식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고요한 암살과 같았습니다.

그는 판사들에게 뇌물을 건네 경쟁사의 거래를 중지시키는 법원 명령을 받아냈고,
주 의회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신이 저지른 불법 행위를 합법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는 언론을 장악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했고,
전신이라는 신기술을 이용하여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독점하고 시장을 교란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절반은 매수하고, 나머지 절반은 위협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는 섬뜩한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성장시키는 건설자가 되기보다는, 회사를 파산시켜
그 잔해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파괴자의 역할을 즐겼습니다.

제이 굴드는 도금 시대가 낳은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형태의 약탈적 자본가였습니다.

대담한 쇼맨: 제임스 ‘짐’ 피스크 주니어

만약 제이 굴드가 어두운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는 조용한 전략가였다면,
그의 파트너였던 제임스 ‘짐’ 피스크 주니어는 그 음모를 화려한 무대 위에서 상연하는
대담한 배우이자 쇼맨이었습니다.

뚱뚱한 체구에 늘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다녔던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을 무엇보다 즐겼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제독이라 칭하며 금으로 장식된 해군 제독 군복을 입고 뉴욕 시내를 활보했고,
자신의 정부이자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조시 맨스필드를 위해 호화로운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주고
그곳을 자신의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피스크에게 투기는 심각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서커스의 가장 짜릿한 공연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배후에는 언제나 제이 굴드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습니다.

피스크의 역할은 일종의 바람잡이였습니다.
그가 시장 전면에 나서서 온갖 허풍과 과장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면, 그사이 굴드는 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의 삶은 짧고 굵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정부였던 조시 맨스필드의 새로운 연인이 쏜 총에 맞아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짐 피스크는 도금 시대의 천박하고 과시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위험한 동맹: 굴드와 피스크

고요한 그림자와 화려한 불꽃.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의 위험한 동맹은 완벽한 역할 분담과 상호 보완성에 있었습니다.

이 동맹의 두뇌는 단연코 제이 굴드였고,
피스크는 굴드가 설계한 작전의 행동대장이자 얼굴마담이었습니다.

피스크의 허세와 과장된 행동은 경쟁자들과 대중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훌륭한 연막이 되었고,
그 연막 뒤에서 굴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파트너십이 가장 빛을 발했던 무대는 단연 이리 철도 전쟁이었습니다.
밴더빌트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 굴드가 불법 신주 발행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피스크는 인쇄기를 들고 직접 뉴저지로 도망쳐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굴드가 주 의회 로비를 위한 자금줄을 확보하면,
피스크는 직접 올버니로 달려가 돈다발을 뿌리며 의원들을 매수했습니다.

그들의 동맹은 신뢰나 우정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이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철저한 기능적 결합이었습니다.

무법자들의 잔혹한 전쟁 기술

이 거인들은 자신들만의 잔인하고 정교한 전쟁 기술을 통해 월스트리트를 지배했습니다.

총력전, 코너링 (Cornering)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잔인한 기술이 바로 코너링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장의 공급과 수요 법칙 자체를 왜곡하여 인위적인 진공 상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상대를 천천히 질식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자금력이 동원된 총력전이었습니다.

코너링은 공매도를 친 곰들의 치명적인 약점,
즉 언젠가는 반드시 주식을 사서 갚아야만 한다는 점을 파고드는 기술입니다.

황소 세력이 시장에 유통되는 특정 회사의 주식을 모두 사들여 자신들의 금고 속에 가둬버리면,
결제일이 다가온 곰들은 패닉에 빠집니다.
주식을 사야 하지만, 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유일한 판매자는 코너링을 주도한 황소 세력뿐이고, 그들은 가격을 얼마를 부르든 곰들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적인 코너링은 한 편의 잘 짜인 군사 작전과 같았으며,
월스트리트를 한순간에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불장난이었습니다.

악마의 발명품, 주식 물타기

모든 창에는 방패가 있는 법.
월스트리트의 가장 강력한 공격 기술이었던 코너링에도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악마적인 방어 기술이 존재했으니,
바로 대니얼 드루가 창시하고 제이 굴드가 완성시킨 주식 물타기였습니다.

이 기술은 코너링을 시도하는 황소 세력에게는 치명적인 독화살이었습니다.
황소 세력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시장의 유통 물량을 거의 다 매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 경영진을 장악한 곰 세력이 뒤에서 몰래 수백만 주의 신주를 인쇄하여 시장에 쏟아낸다면,
황소 세력은 갑자기 나타난 엄청난 물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명백히 기존 주주들의 부를 훔치는 배임 행위이자 사기였지만,
법이 잠든 거리에서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리 철도 전쟁에서 드루와 굴드는 바로 이 주식 물타기를 이용해
밴더빌트의 코너링 시도를 완벽하게 좌절시켰습니다.

조직적 게릴라전, 풀

만약 코너링이 한두 명의 거물이 주도하는 대규모 전쟁이었다면,
풀은 여러 명의 중소 규모 투기꾼들이 늑대 떼처럼 모여 힘을 합쳐 먹잇감을 사냥하는
조직적인 게릴라전이었습니다.

풀은 오늘날의 작전 세력의 원형으로,
특정 주식을 공동으로 매매하여 시세를 조종하고 이익을 나누기로 약속한
비밀스러운 투기 조합을 의미했습니다.

풀 매니저의 지휘 아래, 참가자들은 먼저 목표 주식을 조용히 매집하는 축적 단계를 거칩니다.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면, 언론을 통해 긍정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참가자들끼리 서로 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고파는 통정매매를 통해 주가를 띄우는 인상 단계로 넘어갑니다.

주가 급등을 본 일반 투자자, 즉 양떼들이 시장에 뛰어들면,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보유했던 물량을 팔아치우는 분배 단계를 통해 이익을 실현하고
풀은 조용히 해산됩니다.

이처럼 풀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군중심리를 이용해 일반 투자자들의 부를 합법적으로 약탈하기 위해 고안된
지극히 정교하고 효율적인 사냥 기술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 법과 언론의 장악

도금 시대의 가장 강력한 투기꾼은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장 많은 판사와 정치인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이 시대에 법정은 또 다른 거래소였고,
판결문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자에게 팔려나가는 상품에 불과했습니다.

제이 굴드와 같은 인물들은 뉴욕 시의 부패한 정치 조직이었던 태머니 홀과 결탁하고,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판사들을 자신의 전속 판사처럼 부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지 바너드 판사였습니다.
그는 이리 철도의 판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노골적으로 굴드와 피스크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입법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여 주 의회는 거대한 매표소와 같았습니다.
이리 철도 전쟁 당시 뉴저지로 도망쳤던 굴드는 현금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의회 복도를 활보하며 의원들을 매수했고,
결국 자신이 불법으로 발행했던 수백만 달러의 주식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도금 시대의 투기꾼들에게 법과 정치는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정보가 곧 힘인 금융 시장에서, 여론을 지배하는 자는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투기꾼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언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완벽하게 통제했습니다.

제이 굴드는 여러 신문사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편집장과 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신의 나팔수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특정 주식을 매집할 단계에서는 해당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가짜 뉴스가,
공매도를 칠 때는 온갖 부정적인 악성 루머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갓 발명된 주식 시세 표시기 역시 그의 손에 들어오면 강력한 조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신 회사를 장악하여 시세 정보를 통제했고, 시장이 급변하는 중요한 순간에
경쟁자들이나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시세 정보가 전달되지 않도록 방해하고
자신만이 최신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습니다.

이처럼 도금 시대의 월스트리트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정보가 끊임없이 왜곡되는 거대한 안개의 전쟁터였습니다.

전설로 남은 전투들

이러한 기술들이 총동원된 전설적인 전투들은 월스트리트의 역사를 피로 수놓았습니다.

드라마틱한 복수극: 할렘 철도 코너링

밴더빌트가 월스트리트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된 할렘 철도 코너링 사건은
바로 그런 드라마틱한 복수극이었습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할렘 철도의 맨해튼 노선 확장 잠재력에 주목하여 경영권을 장악했지만,
뇌물을 받고도 배신한 부패한 뉴욕 시의원들의 공매도 공격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의 리더는 악명 높은 정치 보스 윌리엄 보스 트위드였습니다.

분노한 제독은 자신의 막대한 자금력을 총동원하여
시의원들이 내다 판 공매도 물량을 남김없이 사들이는 동시에,
주 의회에 로비하여 노선 연장을 허가받았습니다.

시의원들의 계획과 달리 주가는 폭등했고, 파산 직전에 몰린 그들은 결국 밴더빌트 앞에 무릎을 꿇고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그의 주식을 사서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세기의 대결: 이리 철도 전쟁

할렘 철도 코너링으로 월스트리트를 평정한 밴더빌트의 다음 목표는
당시 뉴욕과 시카고를 잇는 핵심 노선이었던 이리 철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리 철도는 이미 다른 맹수들의 소굴이었습니다.

당시 이리 철도의 재무 담당 이사는 바로 큰 곰 대니얼 드루였고,
그의 곁에는 젊고 야심만만한 늑대인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밴더빌트가 이리 철도에 대한 공격적인 주식 매집에 나서자,
드루, 굴드, 피스크는 자신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췄습니다.

이렇게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추악하며 극적인 전투인
이리 철도 전쟁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한쪽에는 미국 최고의 부와 힘을 자랑하는 밴더빌트가,
다른 한쪽에는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교활하고 무자비한 세 명의 투기꾼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밴더빌트는 자신의 주특기인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한 코너링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바로 그때, 굴드와 피스크는 비밀리에 10만 주라는 엄청난 규모의 신주를
불법적으로 발행하는 주식 물타기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밴더빌트가 주식을 사들이는 속도보다 굴드 일당이 주식을 찍어내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밴더빌트가 분노하여 자신이 매수한 판사를 통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이들은 이미 한발 앞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600만 달러의 현금과 회사의 중요 장부들을 챙겨,
한밤중에 허드슨강을 건너 뉴욕 주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뉴저지로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뉴저지의 한 호텔에 진지를 차리고, 성벽처럼 바리케이드를 쌓은 뒤
무장 경비원들을 배치하여 이리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전쟁은 이제 한 편의 갱스터 영화 같은 추격전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국가를 뒤흔든 탐욕: 검은 금요일

이리 철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제이 굴드의 야망은
이제 한 회사를 넘어 미국 경제 전체를 겨냥했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물은 바로 금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재무부의 금 매각만 막을 수 있다면,
민간 시장에 유통되는 금을 모두 사들여 코너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의 매제였던 아벨 코빈이라는 부패한 로비스트에게 접근했습니다.
금값 상승이 서부 농민들의 농산물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대통령을 설득하는 한편,
재무부의 부차관보를 뇌물로 매수했습니다.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마침내 시장은 광기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금 가격은 장중 한때 162달러라는 경이적인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굴드의 음모를 뒤늦게 알아차린 그랜트 대통령이 마침내
재무부에 400만 달러 규모의 금을 즉시 시장에 매각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렸습니다.

금 가격은 불과 몇 분 만에 수직으로 추락했고,
이 하루 동안의 대혼란은 훗날 검은 금요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한순간에 파산했지만, 이 모든 아수라장 속에서도 제이 굴드는
정부 개입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최고점에서 금을 팔아치워 막대한 이익을 챙기며 유유히 살아남았습니다.

화려한 금박 아래 가려진 진실

부를 향한 열망이 시대정신이었던 도금 시대에,
투기로 막대한 돈을 번 벼락부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과시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짐 피스크는 다이아몬드 단추가 박힌 해군 제독 군복을 입고,
여섯 마리의 백마가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브로드웨이를 질주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외할아버지였던 레너드 제롬은 센트럴 파크 안에 자신만의 경마장을 짓고
파티가 끝날 때마다 여성 손님들에게 작은 다이아몬드 팔찌를 선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들의 저택은 유럽의 궁전을 흉내 낸 거대하고 화려한 성채와 같았고,
파티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의 경연장이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이러한 행태를 경멸하며 그들을 돈 많은 야만인이라 불렀지만,
대중들은 신문에 실린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읽으며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을 꾸었습니다.

늑대들의 만찬과 양떼의 비극

이 화려한 파티의 불빛이 밝을수록, 그 그늘은 더욱 짙고 어두웠습니다.

도금 시대 월스트리트의 잔혹한 진실은, 소수의 거물 투기꾼들이 벌이는 늑대들의 만찬의 비용은
언제나 이름 없는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지불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는 이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을 경멸적으로 양떼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내부 정보도, 막대한 자금력도, 정교한 투기 기술도 없었지만,
오직 일확천금의 꿈 하나만을 안고 월스트리트라는 도살장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거물들이 주도하는 풀이 주가를 끌어올리면, 양떼들은 뒤늦게 가장 높은 가격에 주식을 샀고,
풀 세력이 물량을 모두 처분하고 떠나 주가가 폭락하면 모든 손실을 떠안은 채 시장에 버려졌습니다.

이들의 비극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을 넘어,
사회 전체에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과 냉소를 퍼뜨렸고,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월스트리트에서 한탕 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위험한 인식을 만연하게 했습니다.

또 다른 무법자, ‘월가의 마녀’ 헤티 그린

남성들의 탐욕과 허세가 지배했던 도금 시대 월스트리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제국을 건설한 독보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가의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헤티 그린이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지만,
평생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았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주지를 옮겨 다녔으며,
늘 낡고 해진 검은색 옷 한 벌만을 입고 다녔습니다.

아들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무료 자선 병원을 찾아 헤매다
결국 아들의 다리를 절단하게 만들었다는 악명 높은 일화는
그녀의 지독한 인색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거래소에서 그녀는 그 어떤 남성 투기꾼보다도 더 냉철하고 대담했으며,
돈의 흐름을 읽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녔습니다.
그녀의 투자 철학은 모두가 공포에 떨 때 사고, 모두가 탐욕에 취해 있을 때 파는
역발상 투자의 정수였습니다.

그녀는 시장이 금융 공황으로 무너져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자산을 내던질 때,
유유히 나타나 헐값에 나온 우량 자산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녀는 시장의 심리를 이용해 부를 거두어들이는 또 다른 종류의 냉혹한 무법자였습니다.

부패의 정점: 크레디트 모빌리에 스캔들

도금 시대의 부패는 결코 월스트리트라는 좁은 거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악취는 뉴욕 시청의 태머니 홀을 거쳐,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와
백악관의 문턱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 정점에는 크레디트 모빌리에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크레디트 모빌리에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설립된 유니언 퍼시픽 철도의 자회사였습니다.
유니언 퍼시픽의 대주주들은 이 유령회사나 다름없는 자회사를 통해 철도 건설 계약을 독점하고,
실제 건설 비용보다 몇 배나 부풀려진 공사 대금을 청구하여 막대한 이익을 빼돌렸습니다.

이 거대한 사기극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니언 퍼시픽의 부사장이었던
오크스 에임스 하원의원이 의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에게
크레디트 모빌리에 주식을 헐값에, 혹은 공짜로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뇌물 주식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슐러 콜팩스를 비롯해,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가필드, 그리고 수많은 상·하원 의원들에게 흘러 들어갔습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워싱턴의 부패한 권력은 서로를 먹여 살리는 공생 관계였으며,
그들의 추악한 결탁 아래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부는 끊임없이 약탈당하고 있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통찰, ‘도금 시대’

마크 트웨인은 왜 이 시대를 황금 시대가 아닌,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도금 시대라고 명명했을까?
그의 통찰은 이 시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도금 시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공의 시대였지만,
그 화려한 금박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속에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추악한 상처들이 가득했습니다.

눈부신 부의 이면에는 역사상 최악의 빈부 격차,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
비위생적인 슬럼, 철도 회사의 횡포에 신음하는 농민들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부패는 극에 달했고,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냉혹한 논리 아래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나 공동체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워싱턴을 위대한 바비큐 파티에 비유하며,
정치인과 로비스트, 투기꾼들이 국가의 부를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추악한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도금 시대는 결코 황금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금박 아래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던,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민낯이었습니다.

광란의 파티의 끝과 무법자들의 최후

영원할 것 같았던 도금 시대의 광란의 파티에도 마침내 끝이 찾아왔습니다.
과도한 철도 건설 투자와 무분별한 신용 팽창은 미국 경제에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냈고,
그 서곡은 1873년 오스트리아 빈 증권거래소 붕괴로 시작된
유럽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울려 퍼졌습니다.

결정적인 방아쇠는 1873년 9월 18일,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전쟁 채권을 성공적으로 판매하며 미국의 구원자로 불렸던 당대 최고의 은행가,
제이 쿡의 은행이 파산을 선언하며 당겨졌습니다.

미국 최고의 은행마저 무너졌다는 소식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1873년의 대공황은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장송곡이었습니다.

공황의 충격파 앞에서,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무법자들도 각기 다른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대니얼 드루는 전 재산을 잃고 파산하여, 자신이 세웠던 신학교와 교회에 기부했던 돈마저
되돌려 달라고 애원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뒤 빈털터리가 되어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짐 피스크는 공황이 오기 1년 전인 1872년 암살당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코닐리어스 밴더빌트는 공황 속에서도 막대한 부를 지켜냈지만
1877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제이 굴드였습니다.
그는 1873년의 대공황 속에서도 공매도를 통해 또다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지만,
평생 대중의 끊임없는 증오와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1892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은 자식들의 사치와 낭비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져 버렸습니다.

도금 시대의 파국은 미국 사회에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극심한 경제 침체와 대량 실업, 그리고 1877년의 대철도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겪으며, 미국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것을 맡겨두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외침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각성은 19세기 말 인민주의 운동을 거쳐,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끈 진보주의 시대의 개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독점금지법이 제정되고 철도 운임을 규제하는 기구가 설립되는 등,
도금 시대의 무법자들이 남긴 폐허 위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비로소 통제와 규제,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왜 괴물이 되었나: 탐욕과 공허의 심리학

그렇다면 이 무법자들을 움직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행동은 이성적 계산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일종의 병적인 집착이자 광기 어린 열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를 쟁취하는 과정 자체를 탐닉하는 중독자였습니다.

밴더빌트는 칠순의 나이에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전쟁터에 뛰어들었고,
굴드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감행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힘과 지략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하고 싶어 안달이 난,
위험한 도박꾼의 심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식 시장은 부를 증식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경쟁자를 파멸시키는 쾌감을 맛보는 거대한 콜로세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재적인 두뇌로 시장을 분석했지만,
그 두뇌를 움직인 것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탐욕이라는 뜨거운 심장이었습니다.

그들을 움직인 가장 근원적인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벌인 끝없는 전쟁은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정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마주해야 하는 허무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돈은 그저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점수판에 새겨진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를 바꾸는 과정, 즉 전투 그 자체였습니다.

건설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파괴와 약탈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과 새로운 전쟁터를 찾아 헤맸고,
멈추는 것은 곧 패배이자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이 끝없는 질주는 그들을 당대 최고의 부자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를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약탈 행위를 자유 경쟁, 혁신, 미국 경제의 발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며,
스스로를 낡은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용감한 개척자이자 영웅으로 인식했습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그들의 이러한 자기기만에 완벽한 이론적 갑옷을 입혀주었고,
자신들의 승리가 곧 우월함의 증거라고 굳게 믿게 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자기기만은 그들로 하여금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더욱 대담하고 잔인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괴물은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가장 위험합니다.

도금 시대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150년 전의 낡은 흑백사진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제도는 바뀌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탐욕과 공포,
질투와 자기기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시장은 투명해졌다고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와 밈 주식 광풍 속에서
우리는 제2의 짐 피스크를 봅니다.

정교한 파생상품과 알고리즘 트레이딩 속에서,
우리는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제2의 제이 굴드의 그림자를 봅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정부의 규제를 무력화시키려는 거대 테크 기업들의 로비전 속에서,
우리는 150년 전 올버니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도금 시대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유령은 형태만 바꾼 채, 여전히 우리 곁을 배회하며 탐욕의 속삭임을 건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거대한 확성기일 뿐입니다.
그 확성기를 통해 탐욕이 아닌 창조의 목소리가, 약탈이 아닌 상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

그것은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은 도금 시대의 유령과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선택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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