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몰락 11] – 한 국가가 무너지는 과정: 베네수엘라의 총체적 시스템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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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10] – 베네수엘라 포퓰리즘의 심리학: 차베스 등장의 시대적 배경[베네수엘라의 몰락 12] – 베네수엘라 석유 국유화 정책이 실패로 끝난 과정 분석

지난 열 편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실패의 조각들을 목격했습니다.

이 글은 그 고장들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하나의 치명적인 시스템 고장으로 발전했는지,
빠져나올 수 없는 실패의 연쇄 반응, 즉 피드백 루프를 통해
베네수엘라 붕괴의 전체 그림을 완성합니다.

1부: 모든 실패의 시작, 원죄로서의 자원의 저주

모든 비극의 시작에는 원죄가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그 원죄는 바로 자원의 저주, 구체적으로는 석유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신과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설계도의 첫 번째 결함과 같았습니다.
이후에 발생한 모든 문제들은 바로 이 설계도의 결함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석유 의존 경제는 국가를 지대 추구 국가(Rentier State)로 만들었습니다.
이 개념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가 강조한 제도의 중요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대 추구 국가란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 국가를 운영하는 대신
석유나 광물 같은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지대, 즉 노력 없이 얻는 불로소득으로 운영되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매달 땀 흘려 월급을 받는 가장이 아니라
조상에게 물려받은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살아가는 가장과 같습니다.

이는 국가의 DNA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국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생산 활동을 촉진하고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해
행정 역량을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땅에서 솟아나는 돈을 세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정부와의 인맥을 통해 석유 수입의 일부를 나눠 받는 데 더 집중하게 됩니다.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석유 수입을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리품 쟁탈전이 됩니다.

이 ‘지대 추구’라는 원죄는, 이후에 벌어질 모든 실패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2부: 제1악순환 – ‘국가의 방치’가 ‘경제의 토대’를 파괴하다

원죄는 가장 먼저 국가 경제의 물리적 토대를 파괴하는
첫 번째 악순환의 고리, 즉 부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냈습니다.
피드백 루프란 어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처음의 원인에 영향을 미쳐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연쇄 반응을 의미합니다.

석유의 부, 인프라를 향한 무관심을 낳다
지대 추구 국가가 된 베네수엘라 정부는 막대한 돈을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보다
당장 국민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효과적인 지지 확보 수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석유의 풍요는 역설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투자에 대한 체계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프라의 붕괴, 생산성의 추락을 부르다
국가의 뼈대인 인프라가 부실해지자 그 위에서 활동해야 하는 모든 민간 기업들의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리카르도 하우스만 교수가 지적했듯 전기가 수시로 끊겨 공장 기계가 멈추고
파괴된 도로 때문에 물류비는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되었습니다.

생산성의 추락, 금융 시스템을 후퇴시키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금융 시스템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들은 더 이상 위험하고 수익성 낮은 민간 기업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전하게 높은 이자를 보장하는 정부 국채를 사들이거나 아예 대출 창구를 닫아버렸습니다.
이는 민간 부문으로 흘러가야 할 자본의 혈관을 막아버리는 금융 시스템의 후퇴를 의미했습니다.

금융의 마비, 투자의 실종으로 이어지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민간 기업들은 새로운 기계에 투자하거나
공장을 확장하거나 신기술을 도입할 기회를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이는 곧 모든 종류의 미래 투자가 사실상 실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석유 의존 국가의 안일함이 인프라에 대한 방치를 낳고
붕괴된 인프라는 민간 부문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낮아진 생산성은 금융 시스템의 외면을 부르고
마비된 금융은 다시 민간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생산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 완성된 것입니다.

3부: 제2악순환 – ‘인간에 대한 투자’가 ‘사회적 재앙’으로 변질되다

국가는 물리적, 재무적 토대만으로 서지 않습니다.
그 안을 채우는 사람, 즉 인적 자원과 그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중요합니다.
베네수엘라는 이 인간의 영역에서도 또 다른 치명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석유의 부, 교육의 양적 팽창을 낳다
지대 추구 국가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눈에 보이는 복지 정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교육 투자였습니다.
정부는 넘쳐나는 석유 수입을 이용해 학교와 대학을 대대적으로 짓고 무상 교육을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 거대한 규모의 고학력 인력 공급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 붕괴, 양질의 일자리를 파괴하다
하지만 바로 그 시기 제1악순환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생산 경제는 완전히 붕괴하고 있었습니다.
혁신적인 민간 기업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을 닫기 바빴습니다.
이는 국가가 애써 길러낸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받아줄 양질의 일자리 수요가 사실상 증발했음을 의미합니다.

일자리 부족, 노동 시장을 왜곡시키다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가 추출적 제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듯
이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극도로 희소해지자 정치는 다시 한번 포퓰리즘적인 해결책에 손을 댔습니다.
바로 기존의 있는 일자리를 지켜주겠다는 명분 아래 노동법을 극단적으로 경직시킨 것입니다.
한번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게 만들고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각종 규제를 양산했습니다.

경직된 노동법, 새로운 고용을 질식시키다
하지만 이 보호 장치는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해고가 불가능해지자 기업들은 이제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것 자체를 극도의 리스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완전히 중단했고 이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켰습니다.
이는 대다수의 청년들과 비정규직 아웃사이더들을 공식적인 노동 시장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높은 교육 수준과 높은 기대를 가졌지만,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거대한 좌절한 세대를 낳았고
이들의 누적된 분노는 사회를 뒤흔드는 강력한 정치적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4부: 제3악순환 – ‘경제 실패’가 ‘정치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다

이제 마지막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앞선 두 개의 악순환으로 인해 누적된 경제적, 사회적 실패는
결국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정치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경제 실패, 정치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키다
국민들의 삶이 수십 년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자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 시스템과 정치인 전체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한때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칭송받던 푼토피호 체제는
이제 국민들의 눈에 부패하고 무능하며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공백,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부르다
국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등을 돌리자 거대한 정치적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이 공백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믿음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낸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파고들었습니다.
수십 년간의 경제적 혼란과 부패, 범죄의 경험은 베네수엘라 국민들로 하여금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급진적인 포퓰리즘적 신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휴고 차베스는 바로 이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대변하는 완벽한 상징이었습니다.

포퓰리즘 집권, 제도를 파괴하다
권력을 잡은 포퓰리스트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모든 기존의 제도들을
구체제의 잔재이자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훼손되었고 중앙은행의 자율성은 무시되었으며 언론의 자유는 억압되었습니다.
국가 운영은 더 이상 법과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지도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와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제도 파괴, 완전한 경제 파멸로 이어지다
법치주의, 재산권 보호, 예측 가능한 정책과 같은 시장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마저 파괴되자 베네수엘라 경제에 남아있던 마지막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버렸습니다.
그 어떤 국내외 투자자도 이러한 제도적 무정부 상태에서 투자를 할 수 없었고
경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생산 중단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며 완전한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좌초

결론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붕괴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폭풍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자원의 저주라는 원죄는 국가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고
그 허약한 체질 위에서 인프라와 금융의 붕괴라는 제1악순환이 경제의 물리적 토대를 파괴했으며
교육 투자와 노동 시장의 실패라는 제2악순환이 사회적 갈등과 좌절을 증폭시켰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실패가 누적되어 정치 시스템 자체의 붕괴라는 제3악순환을 촉발시키며
국가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실패의 고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 베네수엘라라는 거대한 배를 침몰시킨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비극의 연대기는 한 국가의 번영이 얼마나 여러 개의 섬세한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만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중 단 하나라도 고장 나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쉽게 모든 것이 함께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붕괴의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으로 베네수엘라 붕괴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한 대장정의 막을 내립니다.

다음 편부터는 이 비극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심층 분석 시리즈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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