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몰락 14] – 베네수엘라 재분배 시스템 실패 원인과 복지 정책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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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몰락 13] – 베네수엘라 재정 정책 실패: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 못한 이유[베네수엘라의 몰락 15] – 베네수엘라 이민의 역설: 두뇌 유출과 노동 시장의 붕괴

지난 편까지 우리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
즉 인프라, 금융, 인적 자본, 노동 시장, 그리고 정치와 재정 정책이
어떻게 총체적으로 붕괴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붕괴는 단순히 거시 경제 지표의 악화가 아닌,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는 구체적인 현실의 총합입니다.

따라서 이번 14편에서는, 마치 지진이 땅을 갈라놓듯 이 거대한 경제 붕괴의 충격이
베네수엘라 사회를 어떻게 두 동강 냈는지, 즉 ‘소득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고자 합니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평등하고 풍요로웠던 사회는
어째서 서로를 할퀴는 깊은 분열의 상처를 안게 되었는지,
그 비극의 뿌리를 추적하겠습니다.

1부: 두 개의 거대한 균열 – 베네수엘라 불평등의 해부

베네수엘라의 불평등은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암세포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나는 국가 전체의 부를 상징하는 파이가
‘자본을 가진 자’와 ‘몸으로 일하는 자’ 사이에서 어떻게 나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나마 노동자들이 가져온 작은 파이 조각마저도,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참하게 갈라졌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두 개의 균열이 베네수엘라 사회를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끌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균열: 자본 대 노동 – 노동자의 파이는 왜 계속 작아졌나?

한 국가가 1년 동안 벌어들인 모든 소득을 커다란 생일 케이크라고 상상해 봅시다.
이 케이크는 두 조각으로 나뉩니다.

한 조각은 공장, 기계, 땅, 금융 자산 같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가는 몫입니다.
이자, 배당, 임대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른 한 조각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한 사람들이 받는 몫, 즉 월급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요소 소득 분배라고 부릅니다.
건강한 경제라면, 케이크가 커짐에 따라 노동자의 몫도 함께 커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케이크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데, 그나마 남은 케이크의 대부분을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독차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케이크의 약 70%가 노동자의 몫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 비중이 50%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각종 법률이 무색하게,
경제 전체에서 노동의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법률이라는 보호막이 실제 거시 경제의 거대한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입니다.

법은 개별 노동자의 최저 임금, 즉 노동력 한 단위의 가격을 정해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경제 전체에서 ‘노동’이라는 생산 요소가 차지하는 총체적인 가치,
즉 몫이 하락하는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노동의 가치를 추락시켰을까요?
그 원인은 우리가 이전 편들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했던
자본 투자 붕괴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자본의 희소성, 노동의 과잉

인프라가 붕괴하고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자,
베네수엘라에서는 새로운 투자가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공장의 기계는 녹슬어 갔고,
새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은 도시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1970년대 국가 총생산의 30%를 넘던 투자는 1990년대에 20%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반면 일하려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니,
노동력은 시장에 넘쳐나는 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놓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귀해진 자본의 가치는 폭등했고, 넘쳐나는 노동력의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낮은 생산성의 덫

자본 투자의 실종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옭아매는 덫이 되었습니다.
마치 뛰어난 요리사에게 낡고 무딘 칼과 불이 약한 화덕만 주고
최고의 요리를 만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낡은 기계와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노동자들이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노동자의 월급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의해 결정됩니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데, 노동자의 몫이 커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임금 일자리의 역설

베네수엘라 경제 분석에 따르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공장 주인이 값비싼 최신 로봇을 더 이상 구하거나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는 노동자 5명을 고용해 로봇이 하던 일을 맡깁니다.

겉보기에는 5개의 일자리가 생겨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업이 이 5명에게 지급하는 월급 총액은,
과거 로봇 한 대를 빌리고 유지하는 데 들었던 비용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 결과, 기업의 비용은 줄어들었지만 경제 전체에서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케이크 조각의 총량은 오히려 더 작아지는 역설이 발생한 것입니다.

두 번째 균열: 잘 버는 노동자 vs 못 버는 노동자 – 갈라진 노동 계급

이제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그 작아진 케이크 조각 내부를 들여다봅시다.
그 조각은 과연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평하게 나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동 계급 내부에 또 다른 깊은 균열이 생겨났습니다.

1단계 (197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기이한 평등

놀랍게도,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이 시기에는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는 교육의 평준화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귀했던 대학 졸업장이 흔해지면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월급 차이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불과했습니다.

2단계 (1990년대 중반 이후): ‘두 개의 우주’로 갈라진 노동자들

199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은 다시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이번에 불평등을 가른 기준은 학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는 공식적인 일자리를 가졌는가, 아니면 길거리로 내몰렸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성 안의 사람’과 ‘성 밖의 사람’

경직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 즉 인사이더들은
그나마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 즉 아웃사이더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비공식 부문으로 내몰렸습니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점상,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매일 아침 생존을 위한 도박을 해야 했습니다.

불안정성의 일상화

1992년 7%였던 실업률은 2000년에 15%로 치솟았고,
비공식 부문 종사자는 국민의 40%에서 53%로 급증했습니다.

노동자 절반 이상이 아무런 사회 안전망 없이
시장의 거친 파도에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한 가정이 언제든 실직이나 질병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불안정성’이
사회 전체를 뒤덮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 불평등의 심화는 학력이나 경력 차이가 아니라,
바로 이 잔인한 운과 불안정성 때문이었습니다.

2부: 빈곤의 폭발 – 누가, 그리고 왜 가난해졌는가

이러한 총체적인 붕괴 속에서, 빈곤은 화산처럼 폭발했습니다.

충격적인 숫자들

1980년, 베네수엘라에서 극빈층,
즉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도 벌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은 단 7%에 불과했습니다.
남미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등한 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1992년에 15%로, 2000년에는 30%로 폭증했습니다.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한때 남미의 희망이었던 나라가
국민 10명 중 3명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빈곤의 원인을 두 가지로 나누어 분석합니다.
바로 파이의 크기가 변하는 성장 효과와,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 변하는 불평등 효과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이 두 가지 재앙이 동시에 덮친 결과였습니다.

1단계 (1980년대): ‘줄어드는 파이’의 저주

1980년대에 빈곤이 급증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바로 경제 전체가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두가 나눠 가질 파이 자체가 작아지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빈곤선 아래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불평등이 줄었기 때문에,
만약 경제가 멈추기만 했어도 빈곤은 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빈곤 증가는 전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2단계 (1990년대): ‘불공정한 분배’의 역습

1990년대에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경제는 계속해서 수축했고(파이는 계속 작아졌고),
동시에 불평등이 다시 급격히 심화되었습니다(작아진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 더욱 불공정해졌습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작아지는 파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작은 부스러기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시기 빈곤율 폭증의 절반은 경제 수축 때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불평등 심화 때문이었습니다.

3부: 국가의 역할 – 무너진 재분배 시스템

그렇다면, 이 끔찍한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 앞에서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베네수엘라의 국가는 국민 전체의 부를 키우는 포용적 제도가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는 착취적 제도의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기능을 잃은 세금 시스템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로빈 후드 역할에 극도로 무능했습니다.

정부 수입의 대부분은 국영 석유 회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사회 전체에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발전시킬 필요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세금 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회 지출의 위험한 착시

놀랍게도, 경제가 붕괴하는 동안에도 교육과 보건 등에 쓰는
1인당 사회 지출의 액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집의 기둥이 썩어 들어가는데도,
페인트칠을 새로 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인프라 투자를 완전히 포기하고 막대한 빚을 내서 당장의 사회 지출 예산을 막았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질의 붕괴

학생 한 명당 투입되는 예산액은 유지되었을지 몰라도,
열정과 지식을 갖춘 교사들은 헐값의 월급을 견디지 못하고 교실을 떠났고,
그 자리는 준비되지 않은 인력으로 채워졌습니다.

병원 예산은 그대로였지만,
의료 장비는 고장 나고 선반의 의약품은 텅 비어갔습니다.
예산의 숫자는 유지되었지만, 그 안의 질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다

사회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포기한 것은,
당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통째로 팔아버린 것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정치적 안정을 위해 국가의 장기적인 생산성을 파괴하는,
지속 불가능한 미래로 향하는 외길이었습니다.

결론: 분열된 사회, 부서진 약속

베네수엘라의 불평등과 빈곤 이야기는,
한 국가의 생산 능력이 붕괴하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실패를 넘어
어떻게 한 사회를 갈가리 찢어놓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교과서입니다.

경제의 생산적 토대가 무너지자, 노동 전체의 몫은 구조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줄어든 몫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노동 시장은 소수의 보호받는 ‘성 안의 사람’과 다수의 불안정한 ‘성 밖의 사람’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빈곤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습니다.

국가의 재분배 노력은, 썩어가는 기둥은 외면한 채 빚으로 페인트칠을 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평등한 중산층 국가를 만들겠다던 ‘베네수엘라 드림’의 약속은 산산조각 났고,
그 자리에는 깊은 상처와 불신으로 서로를 경계하는 분열된 사회만이 남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베네수엘라 붕괴의 거의 모든 해부학적 단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15편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분석을 종합하는 마지막 장으로,
이 모든 실패의 조각들이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되는지,
붕괴의 그랜드 시나리오를 통해 최종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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